연구인력 자리 1200여 감소 전망, 의대 쏠림 가속화

[환경일보]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줄였다. 올해 31조 1천억원의 예산을 내년에는 25조 9천억원으로 줄였다. 33년 만의 연구개발예산 삭감으로, 언론에서 흔하게 말하는 것처럼 IMF 때도 줄이지 않았던 연구개발 예산을 줄인 것이다.

과학 관련 노벨상 하나 받지 못한 나라에서, 기초과학연구 부족이 심각해 소부장, 즉 소재, 부품, 장비 산 기반이 취약한 나라에서 이래도 되나 싶다. 2019년 한일 무역분쟁이 발생하자 일본은 반도체 핵심소재 3가지인 플루오린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의 수출을 금지했고 우리는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연구개발 예산을 줄인 정부의 논리는 ‘성과’가 없다는 것인데,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 성과를 따진다니, 과기부 예산을 기재부 독단으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돈이 되는 연구개발,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연구개발은 기업에 맡기면 된다. 굳이 국가에서 나서지 않아도 민간기업이 알아서 투자하고, 성과를 거둬 매출로 이어진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연구가 필요한 사업,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기초과학 분야는 민간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국가에서 나선다.

효율성 따질 거면 똑똑한 애들만 대학 보내서 가르치면 되지, 굳이 전 국민을 초중고에 보내 돈 낭비를 한단 말인가? 어차피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은 학교 안 보내면 돈도 굳고 좋지 않나? 그럼에도 국가에서 의무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은 누구도 이런 엉터리 같은 논리에 수긍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정부가 들이대는 논리는 과학계 카르텔 때문에 연구비가 새고 있다는 것이다.

R&D 정부 예산 유용 때문에 연구비를 깎는다는 논리도 억지스럽거니와 연구비가 새는 것이 문제라면 새지 않도록 막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못난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이처럼 연구개발비를 줄이면 이는 관련 연구인력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관련 분야의 전망이 어둡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대학원까지 진학할 필요가 없다. 

정부출연연구기관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박사후과정(포닥, postdoc)·학생연구원 등 연구인력의 자리가 1200여 명 이상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필모 의원이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의 출연연 주요사업비 현황과 현재 각 출연연의 연구자(연수직) 인력 현황 등을 감안해 추산한 결과 예산삭감이 현실화가 될 경우, 연수직 연구원의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수직 연구원의 인건비는 출연연 주요 사업비에서 지출되고 있다. 과학계는 이러한 상황에서 출연연 주요사업비를 대폭 줄인다면, 연수직 연구원들이 인건비 삭감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25개 출연연의 주요사업비는 올해에 비해 평균 25.2% 삭감됐다.

대규모 인력 감원은 연구현장에 R&D과제 부실화 등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공계 기피 현상을 심화시켜 R&D 고급인력을 양성하는데 빨간불이 켜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의대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사법시험도 없어진 마당에 시험 한번 잘 치면 팔자를 고칠 유일한 기회는 수능을 거쳐 의대를 가는 것뿐이다.

가뜩이나 SKY 이공계열 학생들이 반수를 거쳐 의대로 진학하는 현상이 심각해진 가운데, 연구비 예산과 일자리마저 줄어든다면 의대 쏠림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과거 한국이 못살던 시절, 부모들은 밥을 굶더라도 아이들은 학교에 보냈다. 내가 힘들어도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면 그들이 사회에 진출해 밥벌이는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당장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반면 현재 세대의 예산정책은 어떤가? 당장 어렵다고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고 있는 상황에 미래 세대의 부담만 커지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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