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 취소 후 이름‧모델번호만 바꿔 재인증

[환경일보] 불법 개조된 음식물 분쇄기가 적발돼 인증을 취소당하고도 곧바로 재인증을 받아 유통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한국물기술인증원의 허술한 관리가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2023년 사이 불법 개조가 적발돼 인증 취소된 분쇄기 제품은 46개 종에 달했다. 제품 인증 취소를 경험한 업체도 19개사에 달했다.

2023년 8월 기준 인증 허가를 보유한 업체는 32개사, 이들이 제조·유통하는 제품 93개 종에 비춰보면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인증 취소 사유는 ▷배출거름망 제거(23개) ▷회수부 탈리(12개) ▷우회배출구 설치(6개) ▷고정거름망 변조(2개) 등이었다. 인증이 취소된 제품들은 모두 분쇄한 음식물쓰레기를 하수구로 직접 배출할 수 있도록 불법으로 개조한 제품이다.

상위법인 하수도법은 분쇄기의 제조·유통·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환경부는 고시를 통해 분쇄한 음식물의 최대 20%까지만 하수관에 배출하고, 나머지 80%는 분리 배출하는 조건부 허용을 고집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소비자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제조·수입·판매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아울러 업체가 분쇄기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의 KC 인증과 한국물기술인증원의 ‘주방용 오물분쇄기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인증이 취소된 업체의 경우 분쇄기에 우회배출구를 설치해 음식물쓰레기를 하수도에 직접 흘려보내도록 불법 개조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주방용 오물분쇄기 인증이 취소됐다.

문제는 인증이 취소된 업체가 18일 후에 다시 제품 인증을 받아 판매를 계속했다는 점이다. 이 업체는 제품 모델명만 바꿔 판매를 계속했지만, 당국의 허술한 관리로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

또 다른 업체는 분쇄기의 핵심 부품인 거름망을 제거했다. 잘게 갈린 음식물쓰레기는 거름망에 걸러지지 않은 채 하수도로 흘러갔다.

불법 개조가 적발돼 지난 1월20일 한국물기술인증원의 제품 인증을 취소당했지만, 5개월이 지난 6월15일 다시 제품 인증을 받았다. 이번에도 제품명 한 글자만 바꿔 인증을 받는 데 성공했다. 두 제품은 같은 KC 인증번호를 갖고 있고, 설계도면 역시 같았다. 심지어 현재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것은 인증이 취소된 제품이다.

이처럼 음식물 분쇄기의 불법 개조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주무 부처의 행정처분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불법 분쇄기가 적발돼도 재인증이 쉽고, 인증 취소 외에 행정처분이 없으니 업체들이 겁을 낼 이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환경부와 한국물기술인증원은 적발 업체를 상대로 최장 2년이 넘도록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허약한 솜방망이마저 휘두르지 않으니, 업체들이 마음 놓고 불법을 저지르도록 판을 벌여준 꼴이다.

불법 분쇄기 문제가 커지면서 환경부 정책연구용역 보고서는 ‘주방용 오물분쇄기 제도 폐지’를 권고했다. 환경부가 2020년 발주한 ‘주방용 오물분쇄기 제도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는 “현행 오물분쇄기 제도는 적법한 유통·사용의 관리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제도 운용은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명시했다.

과연 환경부는 불법 음식물 분쇄기 실태를 모르는 걸까,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아니면 이걸 환경산업 육성의 성과라고 뿌듯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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