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로 통하는 극피동물의 족보
극피동물만의 생존 비결은 캐치결합조직

‘환경부와 에코맘코리아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말똥성게(위), 민가시단풍불가사리(아래)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말똥성게(위), 민가시단풍불가사리(아래)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녹색기자단=환경일보] 문기훈 학생기자 =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을 상징하는 대중적인 소재라고 한다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가시 덮인 밤송이와 울긋불긋한 단풍을 들 수 있다. 흥미롭게도 바다 밑에도 이 둘을 떠올리게 할 만한 것이 있으니 바로 성게와 불가사리다.

우리나라에서 식용하는 성게 중 적당히 가느다란 가시가 돋은 말똥성게는 밤송이같이 생겼다. 겨울 산란기 전 지금 시기가 채취하기 적합하므로 시기적으로도 겹친다. 불가사리 중에서 ‘민가시단풍불가사리’는 그 이름처럼 색과 모양새가 붉은 단풍잎을 따다 놓은 듯하다.

불가사리와 성게는 극피동물문의 구성원으로 바다나리강과 거미불가사리강, 해삼강과 함께 총 5개 하위 분류를 구성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 영도구의 해녀촌을 방문하였는데 해녀가 채취한 해삼과 말똥성게를 볼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딸려온 거미불가사리와 바다나리도 있어서 종류별로 만난 셈이었다.

극피동물을 보면 밤송이나 단풍잎처럼 동물이 아닌 것이 연상된다. 그만큼 그들이 나머지 동물들과 이질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다른지 극피동물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별 모양

바다나리류, 오른쪽은 위를 입 밖으로 내었다.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바다나리류, 오른쪽은 위를 입 밖으로 내었다.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극피동물이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형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몸 중앙의 입을 둘러싼 다섯 방향으로 몸과 기관이 뻗어나가는 5방 사형이다. 쉽게 말해 별 모양이다. 5방 사형은 앞, 뒤, 등, 배가 구분되는 사람과 곤충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 형태를 벗어난다. 대신 극피동물은 입이 있는 면을 ‘구면’, 그 반대 측을 ‘대구면’으로 구분한다. 대구면의 중앙에는 항문이 위치한다.

5방 사형은 바다나리에서부터 해삼에 이르는 극피동물의 진화를 따라 전승되었다. 현존 극피동물 중 가장 원시적인 형태가 바로 바다나리이다. 불가사리가 뒤집혀 입을 위로 향하고 대구면 중앙에선 줄기가 뻗어 지면에 고착한 모양이다.

5개의 깃털같이 생긴 팔을 뻗어 흘러오는 플랑크톤이나 유기물 입자를 잡아먹는다. 팔에 줄지어 나 있는 ‘관족’이 먹이 입자를 잡고 입 쪽으로 이동시킨 후 위를 입 밖으로 내어 녹여 먹는다. 몸 표면에서 돌출된 얇고 안에 물이 찬 기관인 관족은 극피동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고생대 초기 해저에는 이런 극피동물이 꽃처럼 피어있었다.

수류 속에서 모래알 따위와 부딪혀 상처가 날 수도, 팔을 뻗은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쓰러질 수도 있다. 몸을 지지하는 골격계가 필요했고 마치 타일과 같은 작은 뼛조각인 ‘골편’으로 몸을 덮은 껍데기가 그 역할을 한다. 골편도 극피동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고생대 데본기 때 턱 있는 어류 포식자가 번성하면서부터 고착성 극피동물의 일부는 심해로 이주했다. 그 후손들인 바다나리는 얕은 바다에서 내려오는 유기물 입자를 먹으며 심해에서 번창하고 있다. 포식자를 피해 심해로 도망가는 대신 다른 길을 택한 극피동물도 있다. 바다나리강에 속하는 갯고사리는 성체가 되면 줄기에서 분리해 나와 입을 위로 한 채로 착지한다. 팔을 구불거리며 걷거나 파닥여서 수영도 할 수 있다.

거미불가사리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거미불가사리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갯고사리와 반대로 구면을 아래로 향해 착지한 상태로 진화한 무리가 지금의 불가사리다. 원래 먹이 입자를 잡던 관족도 바닥을 향하게 되자 이를 다리로 사용함으로써 돌아다니게 되었다. 불가사리의 구면엔 팔을 따라 길게 홈이 있다. 홈 사이로 꿈틀대는 수많은 관족이 뻗어 나온다.

불가사리강과 달리 거미불가사리강은 소화샘과 생식기관을 중앙의 본체에 몰아넣어 가느다란 팔을 가지게 되었다. 위협을 느끼면 다리 하나를 끊고 도망가기도 한다. 그중 삼천발이는 복잡하게 갈라져 덩굴처럼 된 팔로 먹이를 걸러 잡는다. 이러한 현탁물 섭식은 바다나리 같은 고착생활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식사 방법이다. 다만 불가사리는 조개 등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많다.

성게껍데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성게껍데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성게는 불가사리의 구면이 둥글게 부풀어 몸 대부분을 덮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관족도 성게의 거의 전면에 분포하게 되었다. 죽은 성게껍데기를 보면 잘 드러나는데, 항문 주위에서 입까지 방사상으로 띠 지어진 작은 구멍이 바로 성게의 보대(줄 지어진 관족) 자리이다. 보대와 껍데기 그리고 이빨까지 5방 사형이다.

성게를 위아래로 길쭉하게 잡아 늘여서 옆으로 눕힌 형태로 진화한 것이 해삼이다. 해삼의 조상은 모래로 파고들었다. 모래 속은 포식자의 위협이 적어 가시는 퇴화하였다. 단단한 골편도 아주 작아져 체내에 흩어졌다. 길쭉한 몸은 모래의 저항을 줄여준다. 그러다가 다시 모래 위로 나온 것이 지금의 해삼이다. 얼핏 보면 좌우대칭 같아도 5방사대칭을 버리지 않았다. 입을 둘러싸고 난 촉수는 5의 배수 개다. 해삼은 이 촉수로 모래를 집어 먹는다. 보대도 입에서 항문으로 다섯 줄 뻗어있다.

왜 하필 '5'일까

극피동물이 5방사대칭형을 가지게 된 이유는 조상의 고착생활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수류를 타고 어디로 올지 모를 먹이를 잡기 위해서는 주위 환경으로 균등하게 접하는 방사상이 적절하다. 식물이 빛을 받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뻗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필 5방사인 이유는 섭식 효율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오각형의 꼭짓점을 바다나리의 팔이라고 한다면 먹이를 실은 수류가 모든 팔에 직행한다. 반면 4와 6각형은 절반의 팔이 앞서 먹이가 걸러진 물을 받는다. 물론 5각형도 2개의 팔이 가려지는 경우가 생기지만 일하는 팔이 3개로 더 많다.

또 다른 설명으로 축구공 가설이 있다. 극피동물이 골편으로 골격을 만들 때 5각형의 골편 주위로 골편을 결합해나가면서 자연스레 5방사대칭이 된다는 것이다. 바다나리의 줄기를 이루는 골편은 5각형이라고 한다.

극피동물의 만능 물풍선

거미불가사리 관족 구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거미불가사리 관족 구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무수히 줄지어 나 있는 관족은 많은 능력을 부여한다. 관족은 껍데기의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체외로 뻗어있고 뿌리는 불룩한 자루 모양이다. 자루를 수축시키면 밀려난 물이 관족을 늘이고 관족의 근육을 수축시키면 다시 짧아진다. 구부릴 수도 있어 걷기와 먹이 잡기에도 쓰인다.

빨판이 달린 유형의 관족은 접착제를 분비하고 녹이는 세포도 있어 강한 부착력을 자유롭게 조절한다. 관족들의 전체 표면적은 굉장히 넓어 호흡에 사용할 수 있다. 촉각, 미각, 빛 감지 등의 감각기능도 가지고 있다. 관족이 몸의 옆면이나 윗면까지 분포하는 성게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긴 가시를 둘렀다. 몸집이 커 보이는 부가효과도 있는 든든한 방어 수단이다.

껍데기의 재료공학

성게 골편의 봉합선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성게 골편의 봉합선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극피동물이 가진 골격에는 튼튼한 재료공학이 보인다. 극피동물의 골격계는 작고 얇은 골편들이 인대로 얽어매어져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다.

골편은 보통의 탄산칼슘 결정과 달리 스펀지처럼 구멍투성이다. 빈 곳 없이 단단한 재료는 일단 상처가 생기면 균열이 확장되면서 쉽게 부서진다. 반면 적당히 구멍이 있는 구조는 균열의 끝이 구멍과 하나가 되면서 균열이 차단된다. 이 구멍 속에는 골편을 만드는 세포도 들어 있고, 구멍 사이의 기둥에는 골편들을 연결하는 인대의 콜라겐 끈도 감겨있다.

골편들을 인대로 엮은 구조도 균열과 외력에 강하다. 골편은 원래 나뉘어 있기에 하나의 균열이 다른 곳으로 전파되지 않는다. 골편을 엮는 인대의 끈 구조는 당기는 힘에 저항하고, 누르는 힘에는 골편끼리 밀착하면서 단단해진다.

극피동물이 외골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표피 아래에 있으므로 내골격이다. 뼈 주변과 구멍 속까지 세포로 싸여 있으므로 세포들의 작용으로 뼈를 기르거나 작게 할 수 있다. 골편을 연결한 인대도 늘리거나 자를 수 있다. 따라서 성장하는 몸에 맞춰 껍데기도 재배열해 성장시키므로 곤충 같은 외골격 동물과 차별화된다.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캐치결합조직'

성게 가시 관절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성게 가시 관절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극피동물의 능력을 가장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결합조직이다. 인대와 피부의 진피층은 결합조직에 속한다. 극피동물은 인대와 진피의 단단한 정도 즉 경도를 신속하게 바꾸고 유지할 수 있다. 극피동물만이 가진 ‘캐치결합조직’이라고 한다.

성게껍데기에 솟은 돌기는 그 위에 가시가 얹히는 관절 부위다. 관절에 근육과 캐치인대가 있으므로 움직일 수 있다. 가시로 걷거나 가시를 흔들어 방어하는 종류도 있다. 필요할 때는 캐치인대를 경화시켜 가시를 고정한다. 가시를 건들면 단단하게 세워 방어하고 바위틈에서 쉴 때는 가시를 암벽에 대고 고정한다.

성게는 보통 골편끼리 단단히 봉합되어 있지만, 불가사리는 근육과 인대로 골편을 성글게 엮은 껍데기가 진피층에 파묻혀 있다. 온몸이 관절투성이라는 뜻이다. 덕분에 불가사리는 끈으로 묶어놔도 탈출할 정도로 몸을 쉽게 변형할 수 있다. 막상 불가사리를 만지면 아주 단단 이유는 불가사리가 방어 태세에 돌입해 껍데기의 캐치결합조직(인대와 진피)를 경화시키기 때문이다.

불가사리는 조개를 잡을 때 캐치결합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불가사리는 먼저 유연한 몸으로 조개를 감싸 안은 뒤 캐치결합조직을 강화해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 관족을 조개껍데기에 강하게 부착하고 단단해진 몸을 발판 삼아 수축시킨다. 그 상태로 관족의 결합조직을 굳혀버리면 근육은 쉬어도 계속 힘이 가해진다. 결국 조개가 입을 벌리면 불가사리가 위를 토해내 밀어 넣고 조개를 천천히 소화한다.

해삼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해삼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해삼의 두터운 체벽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피도 캐치결합조직이다. 위협을 느끼면 진피를 경화시켜 그 속에 섞여 있는 미세한 골편과 함께 단단한 재질이 된다. 해삼을 회로 먹으면 오독거리는 이유다. 반면, 계속해서 잡아당겨지는 부분은 진피를 부드럽게 하여 조직을 녹여버린다. 부드러워진 구멍으로 방출한 창자를 적이 먹는 사이 도망치거나, 바깥층을 경화시키고 부드러워진 알맹이만 허물 벗듯이 탈출할 수도 있다.

극피동물의 전략은 에너지 절약

성게의 체강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성게의 체강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극피동물은 캐치 결합조직을 통해 에너지 소비량을 현저히 낮춘다. 자세를 단단히 유지하고 외력에 저항할 때 캐치결합조직은 근육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100분의 1만 사용해도 된다. 쉴 때도 근육은 캐치결합조직보다 3배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근육의 비율은 해삼이 7%이고 포유류는 45%이다. 반면 결합조직은 해삼이 60%이고 포유류는 14%이다.

결과적으로 극피동물은 근육량은 적고 결합조직이 많은 몸으로 에너지 소비가 적은 생물이 되었다. 필요한 에너지가 적으니 다른 동물은 꺼리는 영양가 낮고 오래 걸리는 먹고살아도 된다. 성게는 해조를 천천히 뜯어 먹고, 해삼은 모래를 퍼먹고, 불가사리처럼 바닥의 미생물과 조개를 천천히 먹는다. 먹이가 흔해서 조금만 움직이며 산다.

느려도 포식자 걱정이 적다. 성게는 단단한 껍데기와 가시로 무장하고, 불가사리와 해삼은 독을 품고 있다. 독의 정체는 우리에겐 건강 성분이지만, 물고기들에겐 세포막을 파괴하는 ‘사포닌’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캐치결합조직을 이용한 방어가 있다.

극피동물은 중추신경계가 없다. 섭이, 운동, 호흡, 배설, 감각 등 많은 기능이 관족 과 함께 체표 여기저기 있으니 그들의 반사적인 행동만으로 생활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가 적으니 산소 소비도 적기 때문에 심혈관계도 없다. 체강의 체액을 뒤섞는 것만으로도 체표를 통해 들어온 산소가 충분히 공급된다.

체강에 중추신경도 심혈관계도 없으니 내부 구조가 단순하다. 해삼을 자르면 두 마리가 되고, 불가사리는 잘린 팔을 재생하고, 깨부순 성게의 파편이 물속에서 며칠간 기었다는 일들이 가능한 이유이다.

먹고살 걱정 없고 포식 위험도 낮은데 회복력은 뛰어나다. 이 모두 생존력을 높이는 요인이므로 바다에서 극피동물이 번성하고 있다. 바다숲과 조개양식장이 초토화되거나 그물과 통발에 불가사리만 잔뜩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만의 탓인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불가사리의 몇 없는 천적인 나팔고둥은 남획으로 멸종위기이며, 지구의 이상고온과 이산화탄소 증가는 불가사리의 성장을 촉진한다. 자연과 대화하고 생명의 순환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이고, 불가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좋을 것이다. 왜주름불가사리는 항염증 성분을 이용한 특허가 있고, 불가사리를 이용한 제설제도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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