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 현실 막으려면 ‘줄이려는’ 노력 모아야

[환경일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집 ‘파라다이스’에서는 붉은 고기 한 점만 먹어도 ‘환경파괴범’이 돼 교수형을 당하는 미래세계가 나온다.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만큼 지구 환경이 오염되자, UN사무총장이 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이 더해지긴 했지만, 육식의 환경파괴적 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기후위기와 육식의 연관성은 2006년 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 ‘가축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 발표 이후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당 보고서는 축산업이 운송업보다 지구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끼치며,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육식, 축산업이 ‘기후악당’으로 지목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이 보고서는, ‘탈육식, 즉 채식이야말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행동’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 축산업계를 중심으로 “18%라는 수치는 과장됐다”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지만, ‘육식, 축산업이 환경에 해롭다’라는 사실은 이제 보편 상식이 됐다. 이에 따라 채식, 비거니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월1일은 세계 채식인의 날, 10월2일은 세계 농장동물의 날 그리고 11월1일은 세계 비건의 날이었다. 비건(Vegan)은 1944년, 영국 협회 비건 소사이어티의 설립자 도날드 왓슨이 창안한 용어다. 비건은 베지테리언(Vegetarian, 채식인)의 첫 부분 ‘Veg’와 끝 음절 ‘an’을 결합한 것으로, ‘채식의 종착지는 비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건에서 파생돼 확장된 용어로 비거니즘이 있다. 1951년 비건 소사이어티에서 정의한 비거니즘(Veganism)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삶의 방식 및 신념을 뜻한다. 이렇듯 동물권을 위해 시작된 비거니즘은 페미니즘, 건강, 환경 등 여러 목적과 성격으로 확장됐으며, 기후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한 비건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베지테리언(Vegetarian)에는 크게 가장 엄격한 단계인 비건과, 비건을 목표로 여러 단계의 채식을 하는 ‘비건 지향인’이 있다. 그리고 대안적 형태로 떠오르는 리듀스테리언이 있다. ‘리듀스테리언(Reducetarian, 축소주의자)’은 동물성 제품 소비량 ‘줄이기(Reduce)’에 핵심을 둔다. 필자 또한 리듀스테리언, ‘축소지향의 환경인’이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섭취량을 줄이고 다양한 비건 제품을 즐기고 있다. 환경은 물론 동물권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다. 고기를 완전히 끊을 자신은 없다. 하지만 이 불완전한 노력이, 완전한 포기보다는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돼지 하면 삼겹살만 떠올리는 게 안타까워 주인공을 돼지로 정했다”라는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2017) 촬영 이후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밝혔다. 필자의 지인은 닭 도살장면을 본 후 닭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고기는 끊지 못했지만, 모피코트나 가죽구두 등 동물을 착취한 제품은 사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동물성 제품은 사용하지만 고기는 끊었다는 사람도 있다. 이들 각자의 실천은 작고 불완전한 조각이지만, 그 조각들을 모아 ‘조각모음’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면 지구라는 디스크를 한층 넓게, 쿨하게 만들 수 있다.

“동물권과 환경을 위해 채식하자”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던 지난 923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난 한 중학생은 “어스아워처럼, 작은 실천도 함께 하면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웃었다. 어스아워(Earth Hour)는 1년에 1일,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전세계가 1시간 소등하는 것을 말한다. 환경파괴 요소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들이 모이면 ‘어스아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

영화 ‘말모이’(2019) 속 대사다. 이 영화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한 연대를 말했지만, 이를 환경운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 명의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지향인, 백 명의 축소주의자가 더 큰 힘”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일단 ‘줄이기’를 시작해보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채식인이든 비채식인이든,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 속 세계나 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 속 세계가 현실이 되는 것은 원치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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