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LNG 발전 설비 17.2GW 추가, 좌초 자산 쌓여

[환경일보]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전 세계에서 가스발전 증설이 가장 많은 기업으로 드러났다. 한전은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기후에서 기후 리스크에 매우 취약한 동시에 에너지 위기에서 누적 적자 200조원을 넘으며 재무 위기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막대한 신규 가스발전이 예고되면서 적자의 고리를 끊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5일 독일 비영리단체 우르게발트(Urgewald)와 50개 이상의 단체가 함께 2023년 ‘글로벌 석유·가스 퇴출 리스트(Global Oil&Gas Exit List, 이하 GOGEL)’를 공개했다.

GOGEL은 매년 전 세계 석유·가스 1666개 기업을 대상으로 상류 부문(탐사 및 채굴), 중류 부문(수송)과 발전 부문을 조사하고 관련 정보를 취합해 공개하는 데이터베이스다.

GOGEL 조사 대상으로 포함된 기업이 전 세계 석유·가스 생산량의 95%를 차지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고 조망할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GOGEL의 데이터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가스(LNG)발전 설비를 총 17.2GW를 추가할 계획이다.

16.9GW인 방글라데시 전력개발위원회(BPDB), 14.9GW인 대만전력회사(Taipower), 9.9GW인 베트남 전력공사(ENV), 9.5GW인 중국화능집단공사(China Huaneng Group) 등을 제치고 한전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가스발전 설비를 확충하는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17.2GW 중 14.9GW는 국내에서 석탄발전을 대체하는 용도며, 나머지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스공사와 함께 가스발전소 사업으로 계획한 용량이다.

기후솔루션 오동재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대두하며 에너지 시장이 개편되는 와중에 한전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 연구원은 “한전은 화석연료 발전에 대한 높은 의존이 더 큰 영업 손실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계속 새로운 좌초자산에 투자하고 있다”며 “구식 사업모델을 뒤로 하고 신속히 에너지 전환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정부는 신규 가스발전소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퇴출 계획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시민단체들이 “정부는 신규 가스발전소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퇴출 계획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가스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파동으로 한전의 적자 사태가 촉발됐다.

지난해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이슈브리프 ‘한전 적자, 검은 진범’과 전력거래소의 2023년 1분기 전력시장감시 분석보고에 따르면, 한전의 역대 최대 규모 적자는 화석연료 발전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관련이 깊다.

한전은 지난 13일 10분기 만에 영업이익 2조원을 내 흑자로 전환했다고 발표했지만, 가스값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면서 4분기에는 다시 적자로 돌아설 예정이다.

가스발전 설비를 크게 늘리는 현 계획상 한전의 재정은 화석연료 가격이 휘청거릴 때마다 쉽게 휩쓸리는 추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석탄발전 퇴출에도 진전이 거의 없는 가운데 가스발전 비중을 높이는 계획으로는 앞으로도 한전은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처럼 가스 공급망에 밀접하게 연관된 한국가스공사도 이번 GOGEL에서 노란불이 들어왔다. 가스공사는 전 세계에서 7번째로 액화가스(LNG)를 많이 수입하는 회사에 이름을 올렸다.

가스공사도 급등한 연료값 영향으로 지난 13일 전체 미수금이 15조 5000억원을 넘으며 전례 없는 재무 위기를 맞았다. 급변할 가스 공급망에 가스공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우르게발트의 석유·가스 연구팀장 닐스 바취는 “한전을 비롯해 국가 전반적으로 화석연료 확대가 이어지는 것은 화석연료에서 탈피해 에너지 전환을 이루고자 하는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바취는 “한전은 세계 정상의 가스발전 확대 기업”이라며 “한국 정부는 탈화석연료하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가스 밸류체인에 투자를 늘리려는 한국 기업들도 좌초자산 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발전 부문을 비롯한 모든 가스 산업이 내리막을 달리기 때문에 가스 공급망에 투자하는 게 객관적으로 옳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하는 보고서도 이미 나와 있다.

앞서 2021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파리협정에서 정한 1.5°C 로드맵에 따라 정해진 탄소예산을 고려하면 새로운 석유·가스 탐사와 개발이 필요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지난 10월 IEA는 전 세계 화석연료 수요가 2030년에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새로운 화석연료 사업의 불안정성과 좌초자산 리스크에 경고등이 켜졌다.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전망이 좋지 않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기업들은 ‘중독’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GOGEL 데이터는 전 세계 상류 부문의 96%가 되는 700개 기업이 여전히 새로운 석유·가스 자원을 탐사하고 개발 중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1091개 기업이 새로운 LNG 터미널, 가스운송관,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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