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반려동물을 찍어내는 시대, 그들은 행복할까

[환경일보] 1980년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지금은 하늘로 떠난 뮤지션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라’ 가사처럼 학교 앞에서 100원에 한 마리씩 파는 병아리를 구입한 추억이 있다.

동물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에 어떻게 키우는지 아무것도 몰랐고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하늘로 떠났다. 너무 어려서 동물이 죽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조차 헤아리지 못한 시절이었다.

이후 국민학교 고학년 때는 친구들과 놀다 어린 고양이를 주운 적이 있었다. 어미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였는데, 의논 끝에 얼떨결에 내가 떠맡게 됐다.

그렇게 주워온 고양이를 광에 숨겨두고 키워보려 했지만 하룻밤도 보내지 못했다.

추운 겨울, 광에 홀로 남겨진 새끼 고양이는 밤새 울어댔고 그 소리에 깬 아버지가 광에서 새끼고양이를 발견해 밖에 버리면서 끝을 맺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고양이를 잃었기에 크게 슬프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광에서 울던 새끼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또 얼마 후 학교에서 식물에 대해 배우다 실습으로 강남콩을 키우게 됐다. 화분에 심은 강낭콩은 영양제나 거름도 주지 않았음에도 씩씩하게 자랐고 금방이라도 열매를 맺을 것 같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의 어머니는 주사가 심한 분이었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 귀가하던 어느 날,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어머니는 장독대 위에 놓여있던 강남콩이 심어진 화분을 내동댕이쳐 깨뜨리고 말았다.

일주일도 살지 못한 병아리, 하룻밤도 같이 지내지 못한 새끼고양이와 달리 강남콩 화분은 명백한 ‘악의‘에 의해 죽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듯, 내가 매일 물을 주며 들여다보던 강남콩은, 내가 애정하는 존재였다.

술이 깬 이후에도 어머니에게는 ‘그깟 화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애정을 쏟은 ‘나만의 강남콩’을 잃은 날이었다.

이후 나는 어머니에게 나의 고민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어머니에게 이해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아울러 쉽게 동물을 구입하고, 쉽게 동물을 버리면서 ‘반려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나의 누나는 성질 더럽고 입맛도 까다로운 치와와를 키웠으며,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그리고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커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너무 작아서 컵사이즈라 불리는 강아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 개가 더 커서 컵사이즈가 아니라 농구공만한 사이즈가 되면 그때도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인간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동물을 아무렇게나 사고파는 행위에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가당키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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