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94.3%, 동물과 물건 법적 지위 “구분해야”‧‧‧ 법개정 필요성↑
“지배 대상성 부정하고, 생명체 존중‧관계 재정립 토대 마련해야”

지난달 29일 동물해방물결 주관 및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동물복지국회포럼(대표의원, 박홍근‧한정애‧이헌승 의원), 박주민‧이탄희‧장혜영‧윤미향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 전경 /사진=김인성 기자
지난달 29일 동물해방물결 주관 및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동물복지국회포럼(대표의원, 박홍근‧한정애‧이헌승 의원), 박주민‧이탄희‧장혜영‧윤미향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 전경 /사진=김인성 기자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우리나라 민법은 권리를 가지는 주체와 권리의 대상인 객체를 나눠 규율하고, 동물을 포함한 물건은 권리의 객체로 인식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증가하며 최근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인식이 보편화됐으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된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 국민 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의 비율은 25.4%로 이를 인구로 환산하면 약 1306만명으로 추정된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민들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인식에 공감하고 있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94.3%가 동물과 물건의 법적 지위를 구분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동물을 존엄하게 인식하고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동물의 비물건화가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현실적으로 동물이 재산적 가치를 가지고 소유와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법이 개정되면 관련 산업 및 분쟁에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주장이다.

앞선 반발에도 불구하고 1970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동물의 권리의 객체에서 제외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진행 중이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는 1988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해 세계 최초로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조항을 민법전에 신설했다. 이어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체코, 벨기에,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 동물은 물건은 아니라는 입법이 이뤄졌다.

전 세계, 민법상 동물 ‘감응력 있는 존재’로 정의

최근 10년 동안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등 국가들에게는 동물의 비물건성을 선언하는 것을 넘어 민법상 동물을 ‘감응력이 있는 존재’로 정의하고, ‘종에 따른 필요’를 인정하는 등 동물을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천명하는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민법 개정안이 지난 2021년 정부에서 발의됐으나, 2년 가까이 제대로 된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동물해방물결 주관 및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동물복지국회포럼(대표의원, 박홍근‧한정애‧이헌승 의원), 박주민‧이탄희‧장혜영‧윤미향 의원 주최로 지난달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는 동물의 실효적 보호, 생명 존중 및 동물과 사람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국회 동물복지국회포럼 박홍근 공동대표 의원은 민법 개정안의 통과는 동물권, 동물복지의 완성이 아닌 시작으로, 동물보호 이념의 변화에 따라 법도 변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국회 동물복지국회포럼 박홍근 공동대표 의원은 민법 개정안의 통과는 동물권, 동물복지의 완성이 아닌 시작으로, 동물보호 이념의 변화에 따라 법도 변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물건과 동물을 구분해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에도, 사람과 동등한 생명체로 존중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다.”

이와 같이 언급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려동물 사망 시 임의로 매장이나 화장을 해서는 안 되고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거나, 동거인의 끔찍한 학대로 고통받는 동물을 발견하더라도 동물이 타인의 소유물이기에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현실을 우려했다.

다만 반려동물 외 영업상 사육동물, 야생동물도 물건이 아니라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분쟁 및 혼란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법원행정처에서도 여러 관리 형태가 존재하는 동물을 일률적으로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신중 검토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현행 동물과 관련된 법률은 동물보호법 외에도 ‘가축전염병예방법’, ‘검역법’, ‘공중위생관리법’, ‘낙농진흥법’, ‘동물원및수족관의관리에관한법률’ 등 20여개 법률로 산재돼 있다.

그렇기에 ‘동물의 소유자는 소유권 행사 시 동물 보호를 위한 특별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그에 따라 권리 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조항으로 대체하는 방안 검토 건이 제안되고 있다.

반려동물 늘어났지만, 법이 사회적 변화 못 따라가

박 의원은 “법적으로 동물을 물건 취급함으로써 생기는 몇 가지 문제들만 봐도, 반려동물 수가 늘어난 사회적 변화를 법이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동물이 감각을 지닌 생명체로서 그들의 권리가 보다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와 당장 분쟁 및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최소화하는 혜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동물을 ‘물건’일 뿐으로 취급하는 민법이 그대로 정체돼 있다면, 날로 잔혹해지는 단발성 동물 학대 범죄를 제대로 처벌, 예방할 수 없을뿐더러 ‘반려’, ‘전시’, ‘실험’, ‘축산’ 등 산업에서 날마다 ‘생산’, 이용, 도살되는 동물을 구제, 보호할 기초 조건 또한 확보해 나가기 어렵다고 봤다.

‘동물 비물건화 개정의 법적 의미’에 대해 최정호 서울대 연구교수는 규정 도입의 근본적 의미와 과제의 내용면에서 ‘지배 대상성 원칙적 부정 및 인간-동물 관계 재정립’이라 일컬으며, “원칙적으로 지배 대상성을 부정하며, 생명체 존중 및 관계 재정립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입법 작용면에서는 ‘동물 관련 법질서의 체계정당성 확보 민법 개정’을 통해 민법 스스로 동물을 물건과는 달리 취급함으로써 동물보호법과 모순 없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입법 후에는 물건에 관한 규정 준용이 동물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남방큰돌고래 법적 권리, “생태적 감수성 높아질 것”

한편,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권리를 줬을 시, 남방큰돌고래가 과다번식을 할 경우 해양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와 다른 해양동물의 권리 문제 그리고 과도한 소송 제기 가능성 등에 대한 의제도 다뤄졌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는 남방큰돌고래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면 과다번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남방큰돌고래는 개체수를 쉽게 늘리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돌고래는 한 번에 새끼를 한 마리밖에 못 낳으며, 암컷 돌고래는 보통 3년(임신 1년+육아 2년)에 한 번 출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2012년 남방큰돌고래를 보호종으로 지정했는데도 지난 11년간 전체 개체수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멸종위기까지 떨어진 돌고래의 회복력이 매우 더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 대표는 “만약 생태법인 지정 후 남방큰돌고래가 과다번식하면, 관련 절차를 통해 지정을 해체하면 될 일”이라고 답했다.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권리를 준다면 광어나 한치에게도 법적 권리를 줘야 맞지 않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종의 특수성이나 고유성에 따라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언급했다.

영인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사유재산으로 취급하고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책은 동물과 환경을 비윤리적으로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영인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사유재산으로 취급하고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책은 동물과 환경을 비윤리적으로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남방큰돌고래와 광어, 한치 등은 생태계에서의 가치와 역할, 먹이사슬에서의 위치, 개체군의 증감 상태, 멸종위기 등급, 절멸 또는 위협 상황에 놓인 개체군의 회복력, 현재 전체 개체 수 등등에서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의미다.

개정안 구체적인 내용‧‧‧ 각계각층 충분한 의견 수렴해야

영인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는 “축산업이나 동물실험, 의류산업에서 착취당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그들의 자연수명의 극히 일부만 살다가 죽게 되며, 그 짧은 삶 속에서도 큰 고통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사유재산으로 취급하고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책은 동물과 환경을 비윤리적으로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정안에 의하면 동물은 물건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 그 자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의미가 있으므로, 단순한 선언에 그친다고 볼 수는 없다.

또 개정안은 동물에게 권리 주체성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동물은 여전히 권리의 객체에 해당하므로,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모순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이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입법례에서도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도 물건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석수민 검사는 “동물의 비물건화는 기본적인 취지에 있어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으나, 다수의 법이 제출돼 있기도 하다”고 전하며 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각계각층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는 등 논의를 계속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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