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공시 법제화 늦어질수록 기업 글로벌 경쟁력 약화

[환경일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14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경제개혁연대, 플랜 1.5 등 시민사회단체 및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기후공시의 법제화를 촉구했다.

김성주 의원은 14일 오전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관련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동안 자본시장법은 기업이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하는 사업보고서에 기후와 관련된 정보를 포함하도록 명시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에 신설된 사업보고서 공시 항목은 ▷재무제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가능성이 있는 기후변화 관련 기회와 위험 및 대응계획, ▷온실가스 요소별 배출량과 감축목표, ▷이행 현황과 의사결정구조 등이다. 여기에 더해 이사회는 기후 대응계획과 감축목표, 그에 따른 이행계획을 정기주주총회에서 표결 대상 안건으로 상정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이러한 내용을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14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ESG 공시 법제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그린피스
14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ESG 공시 법제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그린피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세계 주요 국가의 금융규제 당국, IFRS(국제회계기준) 등과 같은 주체들이 앞장섬에 따라 기후 공시 도입이 빠르게 준비되고 있다.

지난 6월에 공표된 IFRS의 ISSB 표준안, 그리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유럽 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은 공통적으로 재무제표가 공시되는 연차보고서에 기업의 기후 대응 정보를 담도록 규정했다.

일본은 ISSB 표준안과 별개로 이미 올해 3월 기업의 유가증권 보고서 등에 지속가능성 정보 공개 법제화를 마쳤다.

또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기후 관련 정보에 대해 주주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심의를 받는 절차인 ‘Say on climate(세이 온 클라이밋)’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가 기후 금융이 경제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공시 제도를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반면, 한국은 아직도 기후공시와 관련한 자체 기준안은 물론, 어떤 일정으로 의무화를 해나갈지에 대한 ‘로드맵’조차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규제 당국인 금융위원회가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기후공시를 법정 공시가 아닌 한국거래소 공시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김성주 의원은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상을 초래하는 단기적 성과주의와 도덕적 해이에 반성이 제기됐고, 재정 투명성 강화를 위해 임원의 개인별 보수와 산정 기준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한 바 있다”면서 “2023년 현재의 시급한 과제는 바로 기후위기 대응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역량 정보를 법정 공시하도록 하고, 거짓 공시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의원은 “금융위는 최근 재계의 요청에 따라 의무 공시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하면서 의무 공시 시행이 불투명해졌다. ESG 공시를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이자 탄소중립을 기준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 중인 산업 변화와도 엇나가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법적 강제력 없는 기후 정보 공개는 기업의 그린워싱을 완전히 막을 수 없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한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자체적으로 통과시켰고 일본도 이미 올해 초 법제화를 마친 상태다. 한국 역시 기후 공시 제도를 조속히 법제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그린피스는 지난 9월 20일 유해한 기업활동으로 인해 보호받아야 할 국민의 환경권과 주주로서의 재산권이 침해됨에 따라 167명의 시민 소송단과 함께 기후공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청구기간 도과’라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은 ‘기본권 침해 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제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일로부터 1년 이내 청구라는 기준을 도과했다는 이유로 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양 캠페이너는 “청구인 가운데는 청소년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이 초등학생이던 2017년에 공시 제도의 미비로 자신의 환경권과 재산권이 침해되리라고 아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각하 결정은 사법부의 후진적인 기후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주장했다.

그린피스와 김성주 의원실은 지난 7월 탄소 중립을 위한 기업의 비재무공시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10월 국정감사 기간 김성주 의원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대상으로 기업의 기후 대응 정보를 법정 공시하도록 요구했다.

앞으로 그린피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정책 로비 활동을 지속하는 한편, 향후 금융위가 발표할 로드맵과 가이드라인을 검토하면서 기후 공시 법제화를 위한 캠페인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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