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 후 최초의 위반 신고 사례

[환경일보] 포스코(POSCO)가 탈탄소를 향한 ‘탄소중립 마스터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는 그리닛(Greenate)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고발당했다.

기후솔루션은 18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환경부에 포스코의 그리닛을 그린워싱 혐의(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및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위반)로 신고했다.

이는 공정위와 환경부가 각각 지난 9월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이하 그린워싱 심사지침)을 개정하고, 10월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이하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 최초의 위반 신고 사례다.

그리닛은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한 포스코가 현재 탈탄소 정책의 대표로 선전하고 있는 브랜드다. 그리닛은 저탄소 철강제품 ‘그리닛 스틸’을 비롯해 ‘그리닛 테크&프로세스’, ‘그리닛 인프라’ 등 3개 브랜드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그리닛 스틸(강철)이 대표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리닛 스틸 부문에 포함된 3개 브랜드 가운데 2개가 실제 탄소 저감 효과는 그다지 없는데 마치 기후 대응과 환경 보호에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인 양 포장하고 있다며 이번에 위반 신고 대상이 됐다.

첫째로 내세우고 있는 그리닛 스틸 브랜드는 ‘그리닛 서티파이드 스틸’(Greenate certified steel, 그리닛 인증 강철)이다.

포스코 ‘탄소중립 마스터 브랜드’ 그리닛의 구성. /자료출처=포스코 홈페이지, 기후솔루션
포스코 ‘탄소중립 마스터 브랜드’ 그리닛의 구성. /자료출처=포스코 홈페이지, 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그리닛 스틸 브랜드는 ‘탄소배출량 0’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탄소배출 저감은 거의 없으면서 이른바 ‘서류상’으로 만들어 낸 탄소배출 제로 철강에 불과하다.

기후솔루션 이명주 철강 부문 책임은 “이런 제품을 탄소배출 0 철강으로 앞세워 홍보하는 것은 쉽게 친환경 이미지를 가져가려는 전형적인 그린워싱 사례”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해당 제품을 지난 6월 출시하면서 LG전자에 건조기 부품 소재로 200톤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홍보한 바 있다.

그리닛 인증 철강이 탄소배출량 0이 되는 비법은 ‘매스 밸런스’(mass balance)라는 계산 방식에 있다.

매스 밸런스란 예를 들어 철강 코일 6개를 생산하면서 탄소배출량을 과거 6개 생산할 때 내던 양에서 5개 생산할 때 내는 양으로 일부 저감하면, 1개의 코일을 ‘탄소배출량 0’ 제품으로 둔갑시키는 방식이다.

즉, 실제는 모든 제품이 기존 대비 5/6의 탄소를 배출한 것이지만, 5개는 탄소배출 제품으로 취급하고, 1개는 친환경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매스 밸런스 방식 설명 /자료제공=기후솔루션
매스 밸런스 방식 설명 /자료제공=기후솔루션

포스코의 매스밸런스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선 탄소 저감량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은 “포스코가 지난해 1년간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은 7019만 톤이었는데, 이 가운데 0.8%에 불과한 59만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고도, 이를 일부 강철에 ‘몰아줘서’ 무탄소 강철 제품을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의 무탄소 철강이 시장에서 허용될 경우 철강 부문의 탈탄소 경로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철강 제조의 70%는 탄소 배출이 큰 석탄 고로 방식으로 제조된다. 석탄 기반 생산을 전기로, 수소환원제철 등 탄소배출이 적은 생산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이 철강 부문 탈탄소의 최우선 정책으로 꼽힌다.

그런데 일부만 감축해도 ‘무탄소 철강’을 만들 수 있는 매스 밸런스 방식이 허용될 경우 철강사들은 기존 석탄 고로를 유지할 유인이 생긴다.

즉 소량의 탄소만 감축해 환경 규제가 엄격한 선진국 시장에는 무탄소 철강을 팔고, 느슨한 저개발국가에는 기존 철강을 팔면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주 책임은 “매스밸런스 방식에 대한 세계적인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제품과 선전이 통용될 경우 이후 철강 부문 탈탄소 달성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서브 브랜드인 ‘그리닛 벨류체인’의 위장 광고 역시 심각하다. 이 부문의 제품들은 탄소 배출의 실제 저감 노력은 전혀 없으면서 단지 ‘고품질의 제품이라 오래 쓸 수 있기 때문에 탄소 배출을 줄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이 부문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이노빌트’(Innovilt) 경우 건물에 들어가는 철강 자재 제품인데, 고품질 강재이기 때문에 고객이 오래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친환경’ 요소의 대부분이다.

이는 구매사의 사정이나 건설업의 상황에 따라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바람에 불과하다.

또 다른 브랜드인 ‘그리너블(Greenable)’은 태양광, 수소, 풍력 등 친환경에너지 시설에 쓰인다는 이유로 친환경 브랜드라고 홍보하고 있는데, 탄소배출량은 기존 철강 제품과 아무 차이가 없다. 단지 ‘친환경적인 곳’에 쓰인다는 이유로 친환경 제품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들어 기후솔루션은 이날 공정위에 포스코의 그리닛을 그린워싱 브랜드로 신고하고, 서울 강남의 포스코센터(강남구 테헤란로 440) 앞에서 규탄 액션을 진행했다.

기후솔루션의 이관행 변호사는 “포스코가 진정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이와 같이 표면적이고 과장된 친환경 마케팅보다, 탄소중립을 구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닥쳐오면서 기업이 실제 탄소 저감 노력 보다 무늬만 친환경을 강조하는 ‘그린워싱’ 광고도 점차 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SK엔무브가 자사 제품을 실제 저감 효과는 미미한데 ‘탄소중립 윤활유’라고 광고했다가 기후솔루션의 문제 제기로 행정지도까지 받은 게 대표 사례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9월 그린워싱 심사지침을 개정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신재생에너지 이용 확대 등에 대해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환경부도 지난 10월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번 그리닛 신고는 공정위 심사지침이 개정되고 환경부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첫 위반 신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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