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과 유가족을 향한 사회적 편견 없애야

[환경일보] 앞으로 언론에서 자살 보도에 ‘극단적 선택’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문 자율규제 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는 12월 ‘신문윤리’ 소식지를 통해 기사 제목에 ‘극단 선택’ 혹은 ‘극단적 선택’을 쓸 때 신문윤리강령 위반으로 제재한다고 밝혔다.

당초 기사 제목에 ‘자살’이라는 표현을 삼간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여기에 ‘극단적 선택’ 표현도 추가한 것이다.

신문윤리위는 “언론은 자살의 유의어로 ‘극단 선택’을 사용하지만, 독자들은 이제 ‘극단 선택’을 ‘자살’과 같은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게다가 ‘극단 선택’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로 인식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학계 등 사회 각계에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는 지난 1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해 “정신 질환 등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에게 선택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다. 남은 유가족들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 OECD 평균 자살률보다 2배 높은 수치를 보이며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30분마다 한명이 자살하고 있으며, 10대와 2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자살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충동적인 자살은 쉽지 않다. 자살하기까지 인간의 뇌는 변화하고 마음이 바뀌는 긴 과정을 거친다”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극단적인 외로움에 놓인 가운데, 뇌가 서서히 변화하고, 결국 자신에 대한 실망이 갈수록 커지면서 자살 외에는 아무런 길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인한 투병 끝에 사망한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한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 자체가 남아 있는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오죽했으면 죽었을까’라는 비난이 남아 있는 가족들을 향하면서, 죽음에 대한 책임을 유가족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외부의 비난이 더해지면서 가족 안에서 서로를 원망하느라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편견들 때문에 장례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외부에 알리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조차 갖지 못한 슬픔은 트라우마로 남아 유가족들의 가슴에 평생 남는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프로그램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남겨진 자살유가족들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자살하는 사람은 1만3천명에 달하며, 그 가운데 40%는 자살한 가족을 따라 자살하는 경우다.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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