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언론과 저열한 관음증이 불러온 죽음

[환경일보] 배우 이선균 씨가 자살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고인은 결국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향했다. 지금껏 고인을 씹고 뜯고 맛보던 언론은 사망과 동시에 180도 태도를 바꿔 경찰의 강압 수사를 탓했다.

언론에게 있어 연예인은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다. 언론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그렇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마음껏 조롱하고 비난하며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공인이 아니라고 반박하면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며 더 큰 비난이 날아온다. 

설혹 사실이 아니라해도 상관 없다. 연예인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언론을 상대로 감히 손해배상이나 사과를 요구하는 간 큰 연예인은 없다. 

신상 공개가 결정되지 않은 피의자는 얼굴에 모자이크를 해주지만, 연예인은 혐의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거침없이 신상을 공개했다.

다시 말하지만, 혐의가 확정돼 최종판결을 받은 범죄자일지라도 법원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신상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이다. 아울러 피의사실 공포 역시 위법이다. 그러나 지금껏 경찰이나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처벌을 전례는 거의 없다.

이번에도 수사당국은 내사단계에서 정보를 흘렸고, 언론은 이를 열심히 받아 썼다. 정밀검사에서도 마약이 검출되지 않았음에도 경찰과 언론은 고인을 압박했고, 포토라인 앞에 세워 조리돌림 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지난 석 달간 이선균 씨 관련 보도는 약 3000여 건에 달했다. 심지어 공영방송인 KBS 뉴스9은 지난 11월24일 이선균 씨와 유흥업소 실장 간의 통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마약을 공급한 조직을 때려잡는게 아니라, 협박을 받아 거액의 금품을 갈취당한 유명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데만 온나라가 혈안이 돼 있었다. 

저속한 내용의 기사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설마 마약 투약 혐의와 무관한 사적 대화를 대한민국 공영방송 메인뉴스에서 보도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공인(公人)은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다. 연예인은 공인도 아니고 공공재도 아니다. 단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이너이고 광대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가중처벌을 할 수 없을뿐더러 조리돌림으로 개망신을 줘도 된다는 규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유명 작사가는 저열한 관음증으로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일조한 자신을 탓하는 글을 올렸다가 “네가 뭔데 대중에게 지적질을 하느냐”라는 비난을 받고 글을 삭제했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연예인이 자살하면, 그 잘못을 악플러 탓으로 몰아간다.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를 싸질러 놓은 언론과 그 기사를 읽으며 저열한 관음증을 충족시킨 대중은 일부 악플러만을 탓하며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잊히면 언론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대중은 관음증을 충족시킬 새로운 가십에 열광한다.

고인의 장례식장에 쳐들어간 사이버 렉카들의 카메라와 언론사의 카메라는 무엇이 다른 걸까?

고인을 협박한 이의 신상을 공개한 한 유튜버는 “유명인을 포토라인에 세워서 사생활을 다 까발리고 앞다퉈 기사를 낸 것은 언론의 순기능이었고, 유튜버가 범죄자를 들춰내면 마녀사냥인가”라고 되물었다.

필자는 유명인과 범죄인 모두의 신상을 함부로 공개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저 물음에는 할 말이 없다.

황색언론의 수요를 만드는 것은 대중들의 저열한 관음증과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끌어내리고 싶은 못난 열등감이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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