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대응 지수 평가국 67개국 중 64위 최하위권 ‘대한민국’
신재생E 목표치 낮춘 정부, 공시의무화 시기 2026년 이후 연기

무개념·무대책 ESG 기조 버리고, 근본적인 체계‧구조 혁신 필요
“노동인권, 노사관계 평가·점검 및 노동조합 참여 보장해야”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지속가능성은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기업도 이윤 추구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기업의 ESG(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정보를 의무 공시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ESG가 기업 경영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됐다.

우리나라의 ESG 기준, 경영, 투자 논의에서 E(환경)와 G(기업 지배구조) 영역에 비해 S(사회) 영역, 그중 중심인 노동 영역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드러남에 따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김인성 기자
우리나라의 ESG 기준, 경영, 투자 논의에서 E(환경)와 G(기업 지배구조) 영역에 비해 S(사회) 영역, 그중 중심인 노동 영역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드러남에 따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김인성 기자

반면 최근 정부는 재계의 의견을 반영해 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국제 평가기관에서 2023년 한국의 국가적 기후 대응 수준이 세계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으며, 이러한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가 ESG 흐름에 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준비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속가능성은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차원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정성과 경제적 효율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되고 중요시되고 있다.

인권·노동·환경 문제보다 기업 성장·생존에 초점

그중 노동과 인권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업 활동에서 벌어지는 인권과 노동, 환경 문제보다는 기업 성장과 생존 위주로만 지원이 이뤄져 왔다.

그 결과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이라는 이중 구조가 확고해졌다. 또 우리나라의 ESG 기준, 경영, 투자 논의에서 E(환경)와 G(기업 지배구조) 영역에 비해 S(사회) 영역, 그중 중심인 노동 영역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1987년 이후 ‘노동 없는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확장 지체’와 함께 노동빈곤을 중심으로 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더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갈등적 노사관계의 근처에 깔린 노동 경시와 배제, 차별 확산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도래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경제, 플랫폼 자본주주의 영향으로 플랫폼 노동의 불안정성 문제가 비정규 노동의 확산과 차별 구조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나 코로나19와 같은 환경문제는 기업 경영에만 아니라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산업 전환에 따른 대응에서 고용과 노동의 문제를 필수적 검토 과제로 꼽고 있다.

이에 ‘ESG 워싱과 저항, 도전받는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윤후덕, 김성주 의원실, 한국노총·경제민주화시민연대 주최로 국회에서 개최된 ‘2024년 지속가능과 노동시장 구조 진단 포럼’에서 김성주 의원은 “현 정부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노조 탓으로 돌리며 노노 간의 문제로만 한정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한 채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에 역행하고 우리 사회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사회, 한국 ESG 흐름 정체·퇴보 지적

이어 윤후덕 의원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국제정세 변화와 세계경제 위축은 ESG 담론의 침체를 낳기도 했다”며 홍보성 기사 남발에 그치는 ESG 워싱 기업들은 예전보다 더욱 빠르게 경영 환경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윤후덕 의원은 홍보성 기사 남발에 그치는 ESG 워싱 기업들은 예전보다 더욱 빠르게 경영 환경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윤후덕 의원은 홍보성 기사 남발에 그치는 ESG 워싱 기업들은 예전보다 더욱 빠르게 경영 환경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국내 ESG 흐름의 정체와 퇴보는 국제사회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국제 평가기관인 저먼워치와 기후연구단체 뉴클라이밋 연구소가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CCPI)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90%를 차지하는 2023년 67개국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전체 순위 중 최하위인권인 64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낮은 순위인 국가는 산유국 3국(아랍에미리트·이란·사우디아라비아)으로, 사실상 한국이 전 세계 기후변화 대응에서 꼴찌라는 얘기다. 최하위를 기록한 우리나라는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목표가 낮아졌고, 이에 따라 기업들의 ESG 경영 역시 후퇴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2023년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지배구조 순위에서도 우리나라는 전체 12개국 중 8위로 하위권에 올라서 국내 대기업의 후진적 경영체계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1~3위의 호주와 일본, 싱가포르는 제외하더라도 공동 6위에 오른 말레이시아나 인도 등에도 못 미친 국제사회의 냉랭한 평가다. 이렇듯 세계 각 기관의 평가에서 국가적으로 ESG 경영의 퇴조가 지적되고 있다.

‘ESG 워싱’ 앞세운 책임 회피 확산

재계를 관통하는 ESG에 대한 무개념과 무대책을 그대로 노출한 경제단체의 발표가 공개된 바 있다.

2023년 2월,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2023년 ESG 주요 현안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는데 61.6%가 ‘ESG 경영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다수가 ‘별다른 대응 조치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가장 시급한 ESG 현안으로 꼽은 공급망 실사법이나 ESG 의무공시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각각 48.2%나 36.7%라는 대다수를 차지해 근본적인 경영 혁신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자인했다. 이러한 현안에 대한 장기적 대응으로 ‘ESG 경영 진단 및 평가, 컨설팅’(22.0%)과 ‘향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예정’(36.3%)이 꼽힌 결과도 유의미하다.

이형철 경제민주화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사실상 경영상 실행계획이 외부 컨설팅과 보고서 작성에 그쳐 ESG 경영을 위한 근본적인 체계‧구조 혁신보다 법제화의 규제까지 적당한 제스처만 취하겠다는 안일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심각한 리스크로 작용할 ESG 기조에 대한 무개념과 무대책이 낳은 광범위한 부작용이 바로 ‘ESG 워싱’이라고 봤다.

L-ESG평가연구원 김성희 소장은 “노동 관점의 ESG 평가기준과 틀을 국제 노동가치 지표에 근거해 구축하고 세부 평가 지표를 재구성해 한국 ESG 논의에서 노동 관점이 경시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환경일보 DB
L-ESG평가연구원 김성희 소장은 “노동 관점의 ESG 평가기준과 틀을 국제 노동가치 지표에 근거해 구축하고 세부 평가 지표를 재구성해 한국 ESG 논의에서 노동 관점이 경시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환경일보 DB

2024년은 ESG 경영에 대한 명확한 목표 설정과 고도화된 공시 기준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공동체적 요구를 재계가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홍보성 기사 남발에 그치는 ESG 워싱이라는 관성에 매몰된 기업들은 예전보다 더욱 빠르게 경영 환경에서 도태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며, 정부 역시 선제적 법제화와 규제 프레임워크를 통해 경제계에 국제기준을 맞출 수 있는 준비기간을 마련해 주고, 지속가능 혁신과 ESG 경영을 촉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동 ESG 세부 평가 기준·방법 구축해야”

노동 기준과 가치의 준수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영, 장기적으로 책임 있는 투자 장려의 중심 요소이나, 한국의 ESG 논의가 국제적인 규준에 비해 허술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L-ESG평가연구원 김성희 소장은 “노동 관점의 ESG 평가기준과 틀을 국제 노동가치 지표에 근거해 구축하고 세부 평가 지표를 재구성해 한국 ESG 논의에서 노동 관점이 경시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며 노동 측면의 ESG 세부 평가기준과 평가방법은 국내 ESG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부연했다.

즉 ESG 경영이 지속적인 경영 원칙이나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평가 및 점검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또 ESG 평가기관들의 평가항목과 평가기준 설정 및 평가작업에 기업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특히 노동인권 및 노사관계 관련 항목에 포함해 이행여부를 평가하고 점검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는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황선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부원장은 “정부는 중소기업의 ESG 대응 지원, ESG 관련 기업 및 산업‧업종‧지역 수준, 노사 간 협력 및 공동대응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연기금 투자나 관리 정책에서 ESG에 입각한 행동준칙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며 공급망실사의 지역 영향 파악 및 지원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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