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8명은 제품 포장에 수리 정보 표기 필요

[환경일보] “일단 AS센터 연락처 찾기도 어려웠고 겨우 찾아 전화를 했더니 업체가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수리 불가해 결국 버려야했어요.”

서울환경연합이 2023년 8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한 수리 실패 사례조사에 참여한 한 시민이 남겨준 말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이 제품을 수리할 수 있는 매뉴얼, 제품의 부품과 설비를 얼마간 보관할 것인가 등 제품을 오래 사용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기업이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기업에서 제공하는 수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제공하지 않으면 제품은 버리는 수밖에 없다.

폐기되는 제품을 원천적으로 감량하기 위해서는 수리 정보 제공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기업에 부과해야 한다. /사진=환경일보DB
폐기되는 제품을 원천적으로 감량하기 위해서는 수리 정보 제공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기업에 부과해야 한다. /사진=환경일보DB

따라서, 폐기되는 제품을 원천적으로 감량하기 위해서는 수리 정보 제공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기업에 부과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는 기업에게 제품 수리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받아 제품을 구매하는 단계에서부터 수리하기 쉽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2021년 1월부터 자국 내 판매되는 가전제품에 대해 ‘수리 가능성’ 등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수리 등급 표시 의무화 제도(Indice de réparabilité)’를 시행하고 있다.

‘수리 가능성’ 지표는 1점부터 10점까지 점수로 표시된다. 점수는 다음의 다섯가지 기준을 통해 산출된다. 정보 제공(매뉴얼), 분해 용이성, 수리 난이도, 부품 공급 원활성, 부품 가격, 제품 특성에 따른 세부 특기사항이 그 기준이다.

전자제품 수리 가능성 지표 산출표 /자료출처=프랑스 정부 홈페이지
전자제품 수리 가능성 지표 산출표 /자료출처=프랑스 정부 홈페이지

청소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노트북, 스마트폰,TV 등 프랑스로 가전제품을 수출하는 한국기업은 프랑스 법안에 맞춰 각 제품의 수리가능지수를 책정하고, 수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프랑스로 수출하는 한국 대기업의 물품들은 수리에 대한 정보 데이터를 구축하고 셈이다.

이 정보가 프랑스 소비자에게 제공되지만 한국 소비자에게 제공되지 않는 이유는 국내 수리권 법안에는 소비자에게 수리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구축돼 있는 수리 정보를 국내에서도 잘 제공받을 수 있도록 법률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환경연합은 시민을 대상으로 ‘수리에 대한 정보(보증기간, 자가 수리 정보제공 등)를 제품의 포장면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응답자의 83.8%가 제품을 구입할 때, 수리정보를 제공 받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프랑스의 ‘수리 등급 표시 의무화 제도’와 같은 제도가 국내에도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환경연합의 수리인식조사 ‘수리에 대한 정보(보증기간, 자가 수리 정보제공 등)를 제품의 포장면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에 대한 응답 /자료제공=서울환경연합
서울환경연합의 수리인식조사 ‘수리에 대한 정보(보증기간, 자가 수리 정보제공 등)를 제품의 포장면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에 대한 응답 /자료제공=서울환경연합

프랑스의 경우 수리용이성 지수를 고가의 대형가전을 중심으로 적용하고 있다. 대형가전뿐 아니라 소형가전에 대한 제도 또한 분리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내에서는 대형가전에 대해서는 A/S 서비스 등 최소한의 수리 영역을 보장하고 있지만 소형 가전에 대해서는 그만한 논의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

국내에서 진행한 수리실패조사에 따르면 61.7%의 응답자가 소형전자제품에서 더 많은 수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서울환경연합은 ‘2023 수리권 정책보고서’를 펴내고, 현 수리권 법안이 시행되는 2025년 전까지 ▷누구든, 어디서나, 언제나 고칠 수 있도록 시민의 수리 접근성을 보장할 것 ▷제품을 처음부터 수리가 쉽도록 설계할 것 ▷기업은 제품의 수리 정보를 제공할 것 이 세가지 내용에 대해, 현재 국내·국외의 현황을 파악하고 정책을 제안했다.

‘2023 수리권 정책보고서’는 이 보고서는 지난 1월 15일에 발행한 ‘2023 서울환경연합 정책보고서’ 중 수리할 권리 항목을 편집한 것으로, 서울환경연연합 누리집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서울환경연합은 2024년에도 지난해에 이어 ‘뭐든지 수리소’ 수리 워크숍, 국제 수리의 날 ‘수리 주간’ 등의 활동을 진행하며 수리할 권리 확대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