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가시화, 강대강 대치 속 환자들만 우려

[환경일보] 의료대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4차례 파업에서 항상 승리를 쟁취한 의료계지만 이번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의사들을 향한 국민 여론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2월 13~15일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답했다.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을 현실에서 느끼면서, 의료계를 향한 국민의 불만은 점차 커졌고, 이번에도 의대 정원을 늘리지 못하면 앞으로도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지난 1년간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점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지난해 정부와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하고 28차례에 걸쳐 회의했지만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의료계는 의사 증원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고, 매번 “우리나라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수가를 올려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가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발표하자 그제서야 성급한 결정이라며 타협을 제안했지만 협상 타이밍이 지난 후다. 

인구 천명당 의사 수는 한국이 2.6명으로 OECD 평균은 3.7명보다 적다. 반면 의료계는 일본 2.6명이나 미국 2.7명과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고,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 OECD 평균보다 의사 수가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현재 3천명인 의대 정원을 5천명으로 늘리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반면 2천명으로도 부족하고 동네병원, 종합병원에서 부족한 의사 수를 모두 합하면 최소 3만명이 충원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의료계가 내세우는 주장은 의사 수가 문제가 아니라 응급의료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증 환자는 넘쳐나는데 중증 환자는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다.

의료 수가 조정 없이 의사들의 희생만 강요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는 것만으로 기피 과목에 의사가 몰려들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지방 의료 활성화에 대한 대안도 없다. 대신 정부는 압도적인 여론을 동력으로 삼아 강경책을 밀고 나갈 수 있다. 의료계 역시 자신들의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는다. 

인력 확충과 함께 정부 지원도 반드시 뒤따라야 하지만, 의사 증원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하다 보니 의료수가나 공공의대 같은 사안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있다.

치킨게임(chicken game)이라는 것이 있다. 두 명의 운전자가 각각 마주 보고 돌진하면서 ‘계속 돌진할 것인가’ 아니면 ‘핸들을 돌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겁을 먹고 먼저 핸들을 돌리면 겁쟁이가 된다. 배우 제임스 딘이 출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도 ‘치킨게임’을 묘사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이 게임의 치명적 단점은 아무도 먼저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결국 정면충돌하게 되고 극히 높은 확률로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상대가 양보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액셀을 밟는다면 결국 두 사람 다 지는 게임이 된다.

백투더 퓨처에도 치킨게임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마이클 제이폭스는 영화 마지막에 치킨 게임을 피하는  사람이 승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와 의료계가 맞선 작금의 사태도 결국 치킨게임이다. 여론을 등에 업은 정부는 물러설 생각이 없고, 밥그릇이 달린 의료계 역시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데 전통의 치킨게임과 달리 이 싸움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제삼자인 환자의 목숨을 걸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가운데 누가 이길지는 모른다. 하지만 패자는 정해져 있다. 바로 환자들이다. 그리고 최종승자는 의대특별반 운영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될 사교육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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