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2천명이 인기과에만 몰린다면 어쩔 텐가

[환경일보] 정부가 의대 정원을 현재 3천명에서 2천명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의료계가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으로 맞서고 있다. 의료 현장은 난리가 나고 있지만, 정부는 전혀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다. 심지어 대통령은 증원에 대해 타협할 수 없으며, 2000명이라는 증원조차 최소 인원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어떤 직업도 자신들의 정원을 스스로 마음대로 정하지 않는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만이 그게 가능하지만, 그들마저도 세비는 늘려도 인원수는 함부로 늘리거나 줄이지 못한다. 국민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지방 의료 현실은 처참하다. 아침마다 지방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온 환자들이 수서역에 긴 줄을 선다. 고작 5분의 진료와 1~2시간의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새벽 기차를 타거나, 전날 미리 와서 ‘환자방에서 쪽잠을 잔다. 항암치료가 너무 늦게 끝나면 1박을 더 해야 한다.

고작 1~2시간의 치료를 위해 짧으면 1박2일, 길면 2박3일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이다.

의사 부족은 국민 누구나 체험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는 일상이고,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은 아이를 키우는 가족들이 총동원되는 이벤트다.

한의사까지 포함해도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OECD와 비교할 때 밑에서 세는 게 빠르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현실이고 따라서 의사 수를 늘려야 할 명분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의대 정원 2천명을 갑자기 늘리면 의료공백이 해소될까? 일단 당장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더라도 그들이 의사로 성장해 자리 잡기까지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10년의 기간 동안 의료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내놔야 한다.

그리고 10년 후 배출될 의사들이 필수과목에 지원하고 지방에 내려가서 의사가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극단적으로 말해 수도권에 근무하는 피부과‧성형외과 의사만 해마다 2천명씩 늘어나면 어쩔 텐가? 싫다는 의사를 억지로 잡아다가 지방병원에 근무시킬 것인가? 지금도 지방에서는 4~5억원의 연봉을 준다는데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지하철, 대형마트, 멀티플렉스 등도 없고 농업에 종사하는 초고령 인구만 남은 곳에, 심지어 아이들이 없어서 학교도 문을 닫은 곳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서 살고 싶은 의사가 얼마나 될까?

게다가 우리나라 의료 시장의 95%가 민간 병원이다. 삼성병원이나 현대아산병원처럼 재벌, 혹은 민간자본에 의해 운영된다. 민간병원은 돈이 되는 과목에 투자하지, 돈만 잡아먹는 필수의료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한다. 

다시 말해 필수과목 의사가 많아져도 민간병원에서 고용해주지 않거나 고용할 병원 자체가 없으면, 스스로 개원의가 되지 않는 이상 쓸모가 없다. 

따라서 단순한 의대 정원 늘리기가 아니라 지역공공병원의 필수의료과목 인재 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료가 낙후된 지역에 공공의대와 공공병원을 지어서 지역에서만 근무하도록 기간을 두어 강제해야 한다.

의료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다. 사람의 목숨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돈이 되는 의료는 지금처럼 시장에 맡겨두더라도, 돈이 안 되는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공공의료이고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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