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은 존엄성을 해친다”

[환경일보]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는 말이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굶주리는 아이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동정심을 유발해 후원을 끌어내는 기법을 비판하는 말이다.

2022년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당시 영부인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의 집을 찾은 사진을 두고 야당 의원이 비판하면서 화제로 된 단어다.

빈곤 포르노는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극적인 편집과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대부분 일회성 기부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는다.

강자의 관점에서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우월의식은, 기부를 받는 약자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는 순간 깨지게 마련이다. 가령 내가 기부한 돈으로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알량한 시혜의 정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사진이 현실을 능가하는 공포와 무력의 이미지를 생산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 가난한 자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를 생산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 화를 내는 것이다.

TV나 유튜브에서 본 아동 후원 광고를 떠올려보자.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이 마실 물을 뜨기 위해 몇 시간이나 물동이를 지고 왕복한다. 며칠을 굶었는지 앙상한 팔다리에 배만 볼록한 까만 피부의 아이는 숨을 몰아쉬고 있다.

시선을 국내로 돌리면 조부모 가정, 혹은 아픈 엄마나 아빠를 둔 가정의 아이가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두 영상의 공통점은 ‘아이, 유색인종’이다. 모두 불쌍하고 어려운 ‘아이’라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팔아 후원을 요청한다.

이에 반해 성인이 되자마자 보육 시설에서 쫓겨나는 아이들의 현실을 지적하는 뉴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이제 막 청년이 된 세대들이 전세사기에 내몰려 목숨을 끊어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합계 출산율 0.72를 기록하며 인구소멸이 걱정되는 현실에서, 청년, 아이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한 인적자원임에도, 그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한국인으로 나고 자란 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더 효과적임에도 사회는 침묵한다. 

이는 동정심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는 것보다 약간의 기부로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는 길을 택한다.

국제 구호개발 NGO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2014년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에서 “미디어 관계자는 아동과 보호자를 무기력한 수혜자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능동적 주체로 묘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누가 누가 더 불쌍한가를 겨루는 ‘천하제일 가난 전시회’는 보는 사람도, 보여지는 사람도 불편하다.

노르웨이의 국제지원펀드(SAIH)는 ‘빈곤 포르노’를 비판하기 위한 영상을 통해 “고정관념은 존엄성을 해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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