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인정 않는 국내 법률 ‘헌법소원’ 제기, “환자‧가족 고통 속 살아”
국민 82% ‘조력존엄사’ 찬성‧‧‧ “자기생명 종결 결정권, 인간 고유 영역”
호스피스‧완화치료, 돌봄제도 등 올바른 제도화 위한 사회적 논의 시급

국내 국민의 82%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할 만큼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위 사진은 8일 국회에서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 한국존엄사협회, 양경규 의원 주최로 열린 ‘조력존엄사 정책 토론회’ 전경 /사진=김인성 기자
국내 국민의 82%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할 만큼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위 사진은 8일 국회에서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 한국존엄사협회, 양경규 의원 주최로 열린 ‘조력존엄사 정책 토론회’ 전경 /사진=김인성 기자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조력존엄사는 삶을 다루는 문제다. 조력존엄사란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가 본인의 의사로 담당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말한다.

고통스럽지 않은 삶의 마무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사회가 보호해야 할 권리인지 논할지는 중요한 문제다.

최근 들어 좋은 죽음이 사실은 삶의 대척점이 아니라 행복한 삶의 연장이라는 다소 금기처럼 여겨지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2022년 7월의 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력존엄사 찬성이 무려 ‘82%’에 달하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급증한 상황이다.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호주··· ‘의료조력사’ 허용

다른 선진국에서도 의료조력사를 허용하는 추세다. 외국인도 허용되는 스위스를 비롯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캐나다, 미국(주마다 기준 상이), 스페인, 호주(6개 주 허용),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콜롬비아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말 존엄사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률이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시민이 외국행 비행기가 아니라 헌법재판소를 두드린 것은 함께 동행한 딸이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헌법소원 청구인이자 환자인 이명식씨는 “깨끗한 죽음이라는 목적이 있기에 헌법소원을 신청한 것”이라며 “현대의학으로는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이 없고, 그 통증을 참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들고, 그렇다고 자살하기에는 그 흉물스러움을 가족으로 하여금 트라우마를 남기기 싫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저 멀리 스위스까지 가서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고향에서 마감하고 싶다며, 조력존엄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환자들의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이나 치료 마련이 아닌 무조건 반대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라고 일침을 가했다.

21대 국회에도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돼 계류 중이지만 다뤄지지 못하고 21대 국회와 함께 폐기될 운명에 있다.

8일 국회에서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 한국존엄사협회, 양경규 의원 주최로 열린 ‘조력존엄사 정책 토론회’에서 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은 “이처럼 제도가 확장되지 못한 공간 속에서 존엄한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뼈로 전이된 암은 특히나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유방암이 뼈로 전이되고 위장으로, 폐로, 피부로 전이된 말기암 환자의 딸인 남유하씨는 엄마의 뜻에 따라 스위스에 가서 조력존엄사를 계획 중이다.

한국에서의 존엄사가 합법이 아니기에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스위스에 가서 의료조력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의사소통, 비용, 탑승 등의 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환경일보 DB
한국에서의 존엄사가 합법이 아니기에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스위스에 가서 의료조력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의사소통, 비용, 탑승 등의 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환경일보 DB

해외에서의 조력존엄사, 비용‧몸 부담 ‘극심’

남씨는 이에 대해 죽고 싶어서가 아닌, 고문처럼 가혹한 통증을 끝낼 방법이 죽음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말할 것 없이 환자에게 스위스에서의 죽음은 많은 부담이 된다. 직항으로 13시간을 비행하는 것은 큰 무리가 가며, 병색이 짙은 경우 탑승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

또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가 없으며, 조력 사망을 진행하는 데 한화로 2000만원 이상이 든다. 법적 문제도 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배경에는 본인 외 가족 등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 형법상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이유가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일찌감치 자살방조죄를 위헌 결정한 바 있다. 독일의 헌재는 해당 법이 임종지원단체 도움으로 죽기를 희망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또 자기 생명 종결에 관한 자기결정은 인간의 ‘인격의 가장 고유한 영역’에 속하며 생명을 종결하려는 개인의 결정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존중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헌재의 경우도 연방헌법에서 도출되는 자기결정권은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의 결정과 행위뿐 아니라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이 제3자의 도움을 요청할 권리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존엄사 입법 부재’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 해쳐

아울러 자살하고자 하는 의지가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것임이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된다면 입법자는 이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대표는 “존엄사의 입법 부재로 신체적, 정신적 질환으로 회복 불가능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외롭고 위험한 방식의 자살을 시도하거나 죽음의 단계에 돌입한 이후 존엄사가 가능한 국가로 힘든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지 않다”고 피력했다.

다만 ‘완화의료, 돌봄지원 확대, 사회복지 연계망 확충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가 경제적 이유나 사회적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국가가 그 보호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대표는 “죽음의 단계에 돌입한 이후 존엄사가 가능한 국가로 힘든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대표는 “죽음의 단계에 돌입한 이후 존엄사가 가능한 국가로 힘든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인성 기자

반면, ‘조력존엄사’ 허용에 대한 반대 의사도 나왔다.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이며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한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이용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인 양심의 자유 훼손 우려”

김정아 동아대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교수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사람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의료조력사가 2004년 현재로부터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서 법제화된다면 가장 취약한 이들의 생명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김 교수는 의사조력사에 대한 조력 혹은 협조의 의무가 의료인 양심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력사가 법률적으로 도입된다면 음지서 진행되던 중증장애인 안락사가 법률적으로 보장받는 환경이 형성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인권위원장은 “장애를 갖게 될 확률이 있다는 이유로 태어나기도 전에 안락사를 당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장애인으로서의 첫 번째 마주한 사회적 위협은 ‘적극적 안락사’기에 중증장애인들의 생존권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예상했다.

장애인 안락사에 대한 악용에 대해서는 반박의 말이 나왔다. 존엄한 죽임이 합법화된 나라의 실증자료에 의하면 사회적 취약계층보다는 고학력자의 이용률이 높다. 단순히 장애인과 노인 등 돌봄 부담에 의한 결정으로 이용한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용인대 임정기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제도적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나 생명을 경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전했다. /사진=환경일보 DB
용인대 임정기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제도적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나 생명을 경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전했다. /사진=환경일보 DB

제도적 요인 중요‧‧‧ “죽음 선택이 생명 경시 아냐”

용인대 임정기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실제로 합법적 안락사가 있는 나라보다 없는 나라의 경우 불법적 안락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며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제도적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나 생명을 경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와 완화치료, 돌봄제도 등이 존엄사와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에 충분히 강조돼야 한다. 독일의 입법안에서 나타난 편견 없는 정보와 자원을 연결시켜주는 국가공인상담센터 구축 등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올바른 제도화를 위해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장 박사는 ▷환자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공적구조 ▷생애 말기 돌봄 시스템을 위한 복지 체계 ▷완화 의료를 포함한 다른 의료 돌봄의 확충 ▷정신 질환 환자의 생애 말기 돌봄 ▷미성년자 보호 ▷일반적인 자살 예방 등의 의견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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