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과목 의사 처우부터 제대로 해야 해법 보여

[환경일보]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주장의 핵심은 이른바 낙수효과다. 필수과목에 의사가 부족하고, 성형외과나 안과 등의 인기과에만 의사가 몰리니 의사를 왕창 늘려서 필수과목에도 의사들이 가게 만들자는 것이다.

아울러 인기 과목에는 의사가 더더더 많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질 테니, 의사들은 돈을 벌기가 힘들어질 테고, 그렇다면 비인기과목에 의사가 몰릴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문제는 두 가지 가정이 모두 실제로 가능한가이다. 비유하자면 대학 4년 졸업한 사람, 즉 일반의가 피부과를 개원하면 3억, 페이닥터로 취직해도 월에 천오백은 버는데, 전문성을 쌓기 위해 석사‧박사까지 공부한 필수과목 전문의는 1억밖에 못 번다.

이는 성형외과나 안과의 경우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에서 비급여로 지정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필수과목은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중요한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치료비가 없어서 사람이 죽는 일이 없게 하겠다’라는 이유로 국가에서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는 대신, 수가를 낮게 후려치기 때문에 돈을 적게 번다. 수술을 할수록, 치료를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전체의 소득이 올라가고 급여항목도 더 많아지는 데 반해, 의료수가는 거의 오르지를 않으니 필수과목 의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기만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의사들의 평균 연봉을 보면 안과는 4억원인데,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1억에 머무른다. 

필수의료과목 의사가 부족해지면 많은 사람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런데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소득이 피부과 의사보다 적다면, 의사 수가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먼저 바꿔야 한다.

게다가 의사 개인의 희생으로 필수과목을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의사에게 요구되는 윤리의식이 강화되면서 자칫 잘못하면 소송에 휘말려 직업 자체를 잃을 위험이 커졌다. 물론,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고 싶은 환자는 당연히 없겠지만 의료과실에 관한 판단을 법률이라는 잣대로 들이댄다는 것에는 고도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수술 한번 잘못했다가 수억대 소송에 내몰리고 범죄자가 된다면 의사들은 소신껏 진료하기 어려워진다.

일례로 우리나라 의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과목이 소아청소년과다. 참을성 없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업무 자체의 특성과 아이 엄마라는 매우 까다로운 보호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다른 과목에 비해 소득은 적다. 사명감이나 책임감으로 버티는 것이다.

그리고 2017년 한 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심정지를 일으키고 80여분 만에 전원 사망하면서 우리나라 소아청소년과 몰락의 스모킹건이 됐다.

결과적으로 202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기는 했지만, 성난 여론에 떠밀려 신생아중환자실 주치의 교수 등 의료진 3명이 구속됐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에 대해 의대 교수들을 포토라인에 세워 조리돌림을 하는 순간,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은 마음속에서 소아과라는 선택지를 지웠다.

게다가 인기과의 경쟁이 치열해질 테니 거기서 떨어져 나오는 의사들이 필수의료과목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은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에 대한 모독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에도 묵묵히 고생하는 사람들을, 고작 성형외과 선발 경쟁에서 도태된 낙오자 취급한다는 게 말이 되나? 원인 분석이 엉터리니, 해법도 엉터리일 수밖에··· 

의사 2천명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너무 무책임하다. 낮은 의료수가, 지방의료 붕괴, 과목별 소득불균형, 그럼에도 부족한 의사 수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한데 정부는 타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부디 선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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