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대언론 협박, 비판의 자유는 어디에

[환경일보] 14일 MBC는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MBC 등 일부 언론사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 내가 (군)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라는 말을 했고, 정부 비판적 기사가 문제가 된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황 수석이 말한 사건은 1988년 8월6월 아침,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었던 오홍근 기자가 출근길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 3명으로부터 습격을 당한 일로, 회칼을 사용한 공격에 오 기자는 허벅지가 깊이 4㎝, 길이 30㎝ 이상 찢길 정도로 크게 다쳤다.

수사 결과 괴한들은 군 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군인들로, 군을 비판하는 오 기자의 칼럼에 불만을 품은 상관들의 명령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정보사 회칼 테러 사건’이다. 

황 수석은 ‘왜 MBC에 잘 들으라고 했냐’는 질문엔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했고, ‘정보 보고하지 말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정보보고를 하지 말라는 말은, 기사는커녕 회사에 보고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MBC 기자협회는 황 수석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협회는 “황상무 씨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수석비서관이고, 이전에는 KBS 9시 뉴스 앵커였다”며 “그런 황 수석의 입에서 ‘회칼 테러 사건’이 나왔을 때 언론인에게 끔찍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못 했단 말인가. 판단을 못 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혹여나 조금이라도 뼈 있는 농담이었다면 그야말로 언론을 상대로 한 테러 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문제의 발언이 나온 식사 자리에는 MBC 기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그 자리에서 같은 발언을 들었지만, MBC 기자들만 보도했고 나머지 언론은 뭉개버렸다.

대통령실 기자라면 그래도 각 언론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기자들일 텐데, 대놓고 기자를 협박하는 발언을 듣고도 농담으로 넘겼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필자는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어땠는지 모른다. 실제로 웃자고 한 소리인데 나만 정색하고 죽자고 달려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농담이라는 것은, 하는 사람도 재밌지만 들은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하는 사람은 재밌지만 듣는 사람이 등골이 서늘하다면 그것은 협박이다.

면전에 협박을 날리고 농담이라며 웃는 권력기관의 실무자와 그 이야기를 듣고 억지웃음을 짓는 기자라니, 이건 무슨 느와르 영화의 한장면 같지 않은가?

이른바 ‘곤조’가 있는 기자라면 당장 그 자리를 뒤집어엎고 나왔어야 했다. 그리고 권력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사안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어야 했다.

회칼 테러 사건의 당사자인 오홍근 기자는 테러 사건 이후 육체적 고통은 물론 평생 가슴에 한과 울분을 간직한 채 2022년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한으로, 불꽃으로 살았다’라는 비문을 남기고 떠났고, 사후 묘지에 새겨졌다.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기사를 쓴 필자는 회칼까지는 아니어도 몽둥이찜질 정도는 각오해야 기사를 쓸 수 있는 걸까?

급기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오늘 오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5.18 민주화 운동 왜곡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할 말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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