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솔루션, 그린워싱 신고 및 해외 금융기관에 문제 제기

[환경일보] 기후솔루션은 지난 20일 2019년부터 그린워싱 의혹이 있는 글로벌 녹색채권을 발행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를 공정거래위원회와 환경부에 각각 표시광고법 위반, 환경기술산업법 위반 혐의 등으로 신고했다.

또 기후솔루션은 4월 중 4개 글로벌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신고·고객불만을 제출한 뒤 충분한 소명이 없을 경우 소송을 검토할 계획이다.

한전의 관점에서 나라 밖에서 문제가 되는 녹색채권을 발행하게 된 맥락은 다음과 같다.

지난 에너지 위기를 지나며 한전은 석탄과 LNG 등 화석연료에 의존한 재무구조 탓에 누적 적자가 최대 50조원까지 증가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한전은 국내에서 2022년 약 31조원, 이듬해에는 약 12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당시 막대한 규모의 한전채는 채권시장의 블랙홀이 돼 한정된 현금 흐름을 독점하고 일반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위축하면서 금융시장 전체를 불안정하게 했다. 이 같은 비판론이 거세지면서 한전은 회사채 발행을 제한했다.

단기사채 시장에서 한국전력 발행량의 비중 /자료제공=기후솔루션
단기사채 시장에서 한국전력 발행량의 비중 /자료제공=기후솔루션

그럼에도 적자 사태라는 급한 불을 끄지 못한 한전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22년 16억 달러, 이듬해 7월 10억 달러, 올해 1월 12억 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녹색 및 지속가능 채권(이하 글로벌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글로벌 녹색채권의 명목은 재생에너지, 전기차 인프라, 에너지효율 개선, 중소기업 지원 및 일자리 창출 등의 부문에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한전이 발간한 2023 녹색채권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녹색채권으로 발행된 총 16억 달러의 수익금 중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재생에너지 연계를 위한 전력망 인프라 구축 사업 등에 약 8.1억 달러만 할당됐을 뿐 나머지 미할당 된 수익금의 사용처는 공개하고 있지 않다.

한전은 당사 홈페이지에 국내 최초 4년 연속으로 총 16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그린본드 채권을 발행했고, 조달한 자금이 국내외 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활용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고동현 기후금융팀장은 “한전은 석탄과 천연가스에 의존한 전력 구매로 2년여간 총 50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다”며 “이로 인해 국내에서도 채권 발행을 확대한 한전의 상황을 고려하면, 해외에서도 발행된 녹색채권 대부분도 이 화석연료 채무를 갚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과도한 부채에도 증가세를 보이는 한전 채권 발행액 /자료제공=기후솔루션
과도한 부채에도 증가세를 보이는 한전 채권 발행액 /자료제공=기후솔루션

녹색채권으로 화석연료 빚 갚았나

비판의 여지는 한전의 해외 채권 발행을 주관한 해외 금융기관에도 있다. 올해 1월 발행 주관사로 나선 곳은 시티그룹(Citigroup), 뱅크오브아메리카 증권(BofA Securities), 스탠다드차타드 은행(Standard Chartered Bank), 미즈호(Mizuho) 총 4개 투자은행이었다.

기후위험 관리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 이 투자은행에는 이미 석탄투자에 관한 기준이 마련돼 있다.

석탄발전 비중이 20%가 넘는 신규 고객을 받지 않고, 고위 위험관리 위원회에 보고하고, 석탄발전소의 신설 및 연장에 대한 금융을 제공하지 않는 등 석탄투자 배제 방침을 뼈대로 삼고 있다.

석탄 투자 배제 정책의 본질적인 취지는 기후위기 기여도가 가장 높은 석탄발전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철회다. 그런데 각 기관은 다소 소극적인 내용으로 회피의 여지가 있다. 각 투자은행의 탈석탄 내부정책을 세부적으로 보면, 대부분 신규 고객으로 적용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또 일부 투자은행은 배제 기준을 산정할 때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느슨하게 설정해 실효성에 물음표를 남긴다.

미래 지속가능 발전 에너지로의 전환이 묘연한 한전의 녹색채권 발행 지원은 해당 기관의 친환경 정책의 취지와 동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즉, 한전의 글로벌 채권 발행의 경우도 세부 정책의 맹점에 해당할 가능성이 짙은 셈이다. 그러나 기후 대응 정책을 잘 갖춘 금융기관의 기준으로 본다면 석탄 발전 자회사를 소유한 한전은 영락없는 석탄발전 기업에 해당한다.

한전이 구매하는 전력 중 석탄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기준 33%이며, 한전이 100% 소유한 발전자회사의 경우에는 생산 전력 중 40%가량이 석탄으로부터 나온다. 해외에서는 석탄발전소 사업까지 진행 중이다.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 해결을 누락한 정부의 한전 구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경각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퍼포먼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 해결을 누락한 정부의 한전 구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경각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퍼포먼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2022년 미국의 기업감시 단체 섬오브어스(SumOfUs), 호주 비영리단체 선라이즈 프로젝트(Sunrise Project) 등 글로벌 기후환경단체들로 구성된 채권 이니셔티브인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Toxic Bond Initiative)’는 한전을 30대 화석연료 기업(Dirty 30)에 선정하고, 글로벌 금융기관 및 기관투자자 74곳에 한국전력 채권을 매입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미 BNP파리바, HSBC자산운용 등 금융기관과 네덜란드 연기금(APG)은 한전의 석탄발전 의존도와 불충분한 탄소중립 계획 등을 사유로 한국전력 채권에 대한 투자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기후솔루션 이관행 변호사(미국 캘리포니아)는 “녹색채권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경성규범이 부재한 상태에서 녹색채권 시장에서 그린워싱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며 “녹색채권은 지속가능한 미래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활용될 수 있기에 활발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동시에 명확한 규제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수도꼭지 역할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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