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에서 발표한 내년 환경정책에서도 알 수 있듯 점차 매체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그 비중이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까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항상 언급됐던 ‘공학적 접근’이란 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이러한 공학적 접근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나왔던 말이 바로 ‘사전예방(preventional)’의 개념이다. 말 그대로 문제가 되는 요인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자는 차원이다.

하지만 사전예방보다 한 수 위의 개념이 있으니, 바로 ‘사전주의(precautional)’다.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예방적인 차원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개념으로 위해하다고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 됐더라도 위험의 개연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줄여나가거나 사용을 금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과학의 기술이 현재의 위해성을 밝혀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그게 위해성이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아리송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감히 담배가 몸에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리고 최근 불거지고 있는 패스트푸드나 여타 가공식품에 그렇게 많은 유해물질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서인지 사전주의라는 게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똑같이 곰팡이 핀 빵을 먹고도 어떤 사람은 배탈이 나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등 개인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작고도 일부에게만 위해한 요인까지도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진정한 사전주의 개념이겠지만 말이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던 여성이 커피를 허벅지에 쏟았고, 그로 인해 화상을 입었다. 그리 큰 화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은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며, 수백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 여성은 커피에 아무런 주의 문구가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아 그렇게 많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커피가 뜨겁다는 사실은 알고 있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사실도 큰 문제로 만들 수 있는 곳이 미국이며, 엄청난 금액으로 배상해 줄 수 있는 곳 또한 미국이란 나라다.

어쨌든 이 일이 있고난 후 맥도널드에서는 모든 맥도널드 커피 컵에 ‘음료가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문구를 넣어 문제가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구에도 소위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시각장애인은 그 문구를 볼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때부터 서버가 음료를 건네며 직접 조심하라는 말까지 꼬박꼬박 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지만 또 달리 보면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이자 주장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똑같은 일이 국내에서 발생했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매장이라면 어느 정도의 보상은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그에 앞서 정작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안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를 입으면서도 정작 피해인지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즉 결론은 국내에서 쫓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의 (환경)관련 법이 변하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변하지 않음을 안심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들 나라에서는 굳이 법이 없더라도 기업이 더 잘 알아서 대처해 나가고 있으며 잘못된 점에 대해 소비자가 결코 호락호락하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한 독성학자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모든 물질은 ‘독’이라고. 다만 그 양이 결정할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전주의라는 게 보다 강화된 ‘예방’의 개념인 것만은 확실한 만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특히 환경에 있어서만큼은 반드시 적용해볼 만한 개념이 아닌가 싶다.

내년 정부의 시책에서 바로 사전예방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사전주의로서의 환경정책을 기대해 본다.

<강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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