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올해 월드컵이 치러진다고 또다시 떠들썩하다. 그 사이 벌써 4년이나 흐른 것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제외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이 빠르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루가 20시간 이거나 일 년이 400일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으며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이 불가역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보람과 의미를 거두냐에 따라서 1시간이 하루처럼 1년을 10년 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획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서 많은 각오와 다짐들을 했겠지만 개의 해를 맞이해 ‘개처럼 살자’라는 것도 덧붙이면 어떨까.

개가 비유돼서 표현되는 경우치고 좋은 것이 거의 없다. 개가 사람과 가장 가깝게 지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불명예를 뒤집어 쓴 듯하다. ‘개 같은…’ 등의 악의적 표현에 대해서 선입견을 버리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칭찬이 될 수 있는 점이 많다.

다름 아닌 개와 사람 간에 오랜 기간 맺어온 조건없는 ‘정’이다. 연말연시면 누구나 들떠있는 시기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지난 한해를 마무리 하고 또 새해를 준비하는 등의 다양한 이벤트가 줄을 잇고 크리스마스, 신정, 설날의 휴일이 이어져 격무에 시달린 직장인도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에도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사회가 바쁘게 돌아가고 그 안의 작은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야 밖의 세상에 대해서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만한 이유는 있겠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물론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굳은 ‘정’을 바탕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지만, 내 책임이나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은 타협조차 하지 않는 등 우리에겐 수많은 갈등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한적한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항상 주인을 따라 다니던 개가 있었다. 심지어 주인이 경운기나 자전거를 타고 갈 때도 숨을 헐떡이며 뒤를 따르는 모습을 보곤했다. 이처럼 개는 조건을 달지 않고 자신을 돌봐주는 주인을 잘 따른다. 물론 자신이 소비한 노력만큼의 보상은 마땅히 돌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다양한 인간사에 사사건건 계약이나 보상 등을 계산하려 든다면 참으로 각박하고 정떨어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한참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얼마전의 폭설과 더해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웃들이 많은 가운데 부족한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에 나서거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손때 묻은 돈을 성금 하는 등의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이들이 정말 ‘개’처럼 조건없는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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