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최근 자주 거론되는 경제문제 중 하나가 바로 석유가격과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대변되는 에너지 및 자원 문제일 것이다. 게다가 전 지구적 차원의 지구온난화에서 지역 단위의 환경오염 문제에 이르기까지 경제활동으로 인한 환경문제도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및 자원절약과 환경오염 문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있는 대안 중 하나로 생태산업단지(Eco-Industrial Park)가 주목받고 있다. 생태계의 물질순환원리를 모방한 생태산업단지는 단지 내의 녹지 조성에서부터 에너지의 공동 활용, 나아가 부산물 및 폐기물, 즉 순환자원의 거래에 이르기까지 기업 간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오염도 최소화하는 일거양득의 전략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3개 지역에 시범단지를 지정하는 등 생태산업단지와 기업 간 자원순환에 대한 정책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우리나라의 생태산업단지나 기업 간 자원순환은 아직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평가는 시기상조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중요한 원칙이나 외국의 사례에 비춰 몇 가지 유의할 점을 짚어보는 것은 현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생태산업단지, 그리고 기업 간 자원순환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계획이나 외부 전문가의 역할보다 기업들의 자율적인 이해관계에 기초한 다층적인 네트워크의 형성이 중요하다. 생태계의 질서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설계한다고 그대로 실현되기 어렵듯이, 기업 간의 자원순환 네트워크 역시 인위적 설계와 외부 지원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단기간에는 유지될 수 있지만 외부 지원이 중단되거나 경기 부침에 의해 기업 환경이 변하면 쉽게 붕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유럽의 생태산업단지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자율적인 네트워크인 반면,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정부 주도적 경향이 강했다.
그렇다고 생태산업단지나 기업 간 자원순환에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생태산업단지 등과 같은 기업 간의 자원순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진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구축하고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칼룬보르의 경우, 정부가 강력한 환경규제정책을 펴되 경직적인 사후규제(end-of-pipe policy)가 아니라 기업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예측하고 미리 대응하는 사전대응적(proactive policy)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이 주된 성공요인 중의 하나였다. 이에 비해 현재 우리나라의 폐기물 규제(폐기물관리법 등)는 경직적인 사후규제적인 성격이 강해 산업단지 내에서는 물론 인접지역의 기업 간 폐기물 교환이나 유통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도 점차 폐기물관리법 등의 법과 제도를 유연하게 변화시켜 기업의 폐기물 처리와 교환에 자율성과 융통성을 부여하되 그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책(예컨대 RFID를 활용한 추적 혹은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태산업단지의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경제성 평가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구축으로 인한 환경성 평가(LCA 등) 등을 동시에 병행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환경성의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큰 거래나 교환이 단지 기업의 개별적인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유인제도의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이와 같이 생태산업단지, 그리고 기업 간 자원순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주도적인 계획자(planner)보다 법적·제도적 여건 구축을 통한 촉진자(facilitat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간 자원순환 네트워크 구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 스스로의 관심과 참여다. 나아가 기업 간 거래 네트워크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업 간의 상시적인 협의채널이 중요하다. 거래에 따른 경제적 이해문제에서부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공동으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기업 간 네트워크의 유지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폐기물관리법의 제약이란 탓도 있지만, 폐기물 거래에 따른 기업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기업 스스로가 폐기물이나 부산물 거래에 소극적인 측면도 있다. 또 기업경영에서도 다른 기업과 협력하는 개방적인 분위기가 미흡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생태산업단지와 기업 간 자원순환 네트워크는 단순히 폐기물이나 부산물의 거래로 환경도 살리고 경제적 실리도 취한다는 차원을 넘어 다소 폐쇄적인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 분위기를 상생 전략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른바 디지털 컨버전스가 대세인 미래에는 독불장군식의 기업 경영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생태산업단지는 자연생태계로부터 생태계의 물질순환원리만 배울 것이 아니라 ‘그물망 공생’이라고 불리는 자연 내부의 협력원리, 즉 공생의 생존전략까지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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