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일 정부의 숙원사업이었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가 주민투표에 의해 가장 찬성도가 높았던 경상북도 경주시로 확정됐다. 방폐장 하면 잘은 몰라도 좋지 않은 것이라는 정도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간 투표율 경쟁을 불러올 만큼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던 까닭은 방폐장의 안전성이나 신뢰도가 높아진 것도 있지만 결정적 이유는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한 뿌리치기 힘든 당근을 제시한데 따른 것이다. 최근 들어 방폐장을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홍보비용을 투자한 까닭에 빚에 시달리는 지차제가 나타나는가 하면 정부가 홍보비용을 보전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과열 유치전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실수를 반성하고 자성할 시간도 없이 다시금 치열한 유치전 제2라운드가 막을 올렸다. 다름 아닌 방폐장 유치와 더불어 경주 ‘3대 국책사업’이라 불리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과 양성자가속기사업 유치경쟁이다. 한수원은 자산 규모가 22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한수원이 자리 잡게 되는 지역에는 본사 건물은 물론 국제회의장, 종합축구경기장, 사원아파트도 인근에 들어서게 돼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양성자가속기사업도 2만여 명의 인구가 유입되고 4000명이 넘는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대규모 사업이다.

양성자가속기사업에 일찌감치 뛰어든 경주시 안강읍과 천북면 외에도 건천읍, 서면, 산내면 등이 유치에 본격적으로 가세함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으며 한수원의 유치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는 양북면과 양남면도 양성자가속기사업도 함께 유치해야 한다며 혼전 양상을 띠고 있다. 위 지역들의 유치요구는 저마다 그럴 만한 사유가 있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방폐장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지역발전 일환으로 양성자가속기사업과 한수원 본사 이전은 정부 측 약속 중의 하나다. 하지만 대규모 사업이다 보니 요모조모 관찰하고 고려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어느 한 사항에 대해 치우쳐 결정하게 된다면 이번 역시 그 후유증 해결에 많은 갈등과 비난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낙후한 지역경제 활성화도 마땅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지만 이것은 여타의 그 어느 지역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함께 양성자가속기사업의 원활한 성장과 한수원의 업무정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장애요소가 없어야 한다는 점도 반드시 함께 검토돼야 한다.

각 지역들마다 유치단을 구성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지리적 특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현장조사가 진행 중인 수준이기 때문에 무리한 홍보보다는 정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협조와 도움을 아끼지 않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할 것이다. 만일 지금의 과열화 유치경쟁이 지속된다면 부지 선정 이후의 후유증은 지난 방폐장 선정 후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되밟게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우선은 유치를 희망하는 각 지역들이 좀 더 신중하게 한수원 본사 이전과 양성자가속기사업의 진행을 관망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이와는 반대로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열·혼전 양상으로 치닫는 유치경쟁을 조절하고 중재하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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