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물은 그 이용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갖는다. 예컨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식수, 불순물을 제거한 증류수, 탄산가스를 다량 포함하고 있는 소다수, 광물질이 들어 있는 광천수 등 끝이 없을 정도로 그 이름과 종류가 많다.
또한 위치와 맛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의 북악산을 중심으로 오른쪽 인왕산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백호수, 왼쪽 삼청동 뒷산에서 흐르는 물은 청룡수, 남산에서 흐르는 물은 주작수라고 불렀다. 또한 같은 물이지만 산꼭대기에서 나는 물과 산 밑에서 나는 물의 맛이 다르고, 바위 틈새에서 나는 물과 모래에서 나는 물의 맛이 각각 다르다. 흙 속에서 나는 물은 맑기는 하지만 텁텁한 맛이 나고, 고여 있는 물보다는 흐르는 물이 맛이 좋으며, 응달물이 양지쪽 물보다 맛이 좋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우남양이라는 선비는 물을 암물과 숫물로 구분하고 자신은 숫물만을 마셨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샘물 중에 물빛이 맑아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가벼운 물은 숫물이고, 물 색깔이 희뿌예서 물 밑이 어둡고 무거운 물은 암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물에 대한 관심과 지혜가 남달랐다. 특히 조선시대 의성으로 불리는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보면 물에 대한 조예가 얼마나 깊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 시대(16세기) 세계 어느 민족이 물에 대해 이토록 깊이 연구하고 정밀하게 분석해 놓았을까 생각하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의 ‘수품론’에서 물을 무려 33종으로 분류해 놓았다. 그 성질과 용도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해 놓았는데 언뜻 단순해 보이는 물을 어쩌면 그렇게 많은 종류로 나뉘고 그 효능도 제각각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물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조상들의 지혜로운 물 연구를 살펴보기로 한다.

◉정화수(井華水)
옛날 수도가 없던 시절, 우리 어머니들의 하루는 물과 함께 시작됐다. 이른 새벽 샘이나 우물가에 가서 제일 먼저 길어올린 물이 바로 정화수다. 이 깨끗한 정화수 한 대접을 떠놓고 맑은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 후 정성껏 물을 길어와서 식사 준비도 하고 식구들에게 물을 공급하기도 했던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정화수는 성질이 순하고 맛이 달고 독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몸의 구격(九嗝), 즉 입과 눈·코·귀의 두 구멍, 항문과 요도 등 모두 아홉 구멍으로부터의 출혈을 치료하며 입냄새를 제거해 준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색을 곱게 해주고 음주 후의 신열과 배탈을 다스린다. 이 정화수로는 약을 달이고, 개고, 먹는 데 적합하며, 술이나 식초에 넣으면 그 음식이 썩지 않는다고 한다.

◉국화수(菊花水)
국화수는 국영수(菊英水)라고도 하는데 국화로 덮인 못이나 수원지의 물을 말한다. 이 물은 정화수처럼 성질이 온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는 특성이 있고 중풍으로 마비가 된 몸의 풍기를 제거하고 어지럼증을 다스리며 몸의 쇠약함을 보해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국화수는 사람의 안색을 좋게 하고 오랫동안 마시면 수명이 길어지며 늙지 않는다고 한다. 국화는 약용 식물인 데가 4군자의 하나로 우리 겨레의 오랜 사랑을 받아 왔으니 좋은 물과 결합하면 얼마나 유용한 물로 쓰이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감란수(甘爛水: 냉수를 저어서 뜬 물)
깨끗한 물 한 말을 큰 항아리에 붓고 국자로 수백 번 저어 흔들어대면 물 위에 수많은 구슬방울이 뜨는데 이것을 떠서 쓰는 물이 바로 감란수다. 이 물로는 곽란(갑자기 토하고 설사가 나며 고통이 심한 급성 위장병)을 다스리고, 방광에 들어가서 장과 경련으로 인한 복통을 다스린다고 한다.

◉급류수(急流水: 급히 흐르는 물)
급류수는 흐르는 물결이 마구 뛰놀고 급하게 흐르는 물인데 성질이 급속해 밑으로 내려가므로 막힌 대변의 통변을 돕는 약으로 쓰인다.
◉순류수(順流水: 곱게 흐르는 물)
순류수는 성질이 순해서 아래로 조용히 흐르기 때문에 방광병을 다스리고 통변을 돕는 데 쓰인다.
◉역류수(逆流水: 거슬러 흐르는 물)
거슬러 흐르는 물, 즉 천천히 흐르고 파도를 일으키며 맴돌기를 많이 한 물을 가리킨다. 성질이 거칠고 거스르면서 뒤집혀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가래를 많이 뱉게 하는 데 쓰인다.
◉하빙(夏氷: 여름에 쓰는 얼음)
성질이 대단히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서 열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여름에 얼음을 쓰는 것은 다만 음식에 가까이 써서 냉하게 하는 것으로, 부숴서 먹으면 잠깐 동안은 상쾌하지만 오래되면 오히려 병이 될 수가 있다.
◉방제수(方諸水: 아침 이슬의 일종)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으니 부스럼독을 씻고 흉터를 없애준다. 그리고 이 물로 옻을 씻으면 깨끗해진다고 한다.
◉옥류수(屋霤水: 지붕을 씻은 물)
지붕 위에 물을 뿌려 처마 밑에서 받은 물이다. 이 물로 개한테 물린 상처를 씻으면 치유된다고 하며, 처맛물에 젖은 흙을 개 물린 상처에 바르면 즉시 차도가 있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물에는 독이 대단해서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한천수(寒泉水: 좋은 우물물)
성질이 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주로 소갈증(목이 말라서 물이 자꾸 먹히는 병. 주로 당뇨병․과로․방사 과도 등으로 인해 일어남), 구역질, 열병과 이질, 임질 등을 다스리는 데 쓰인다. 산초나무 독을 풀어주고 생선가시가 걸린 것을 내려가게 해준다.
◉추로수(秋露水: 가을 이슬)
성질이 부드럽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서 조갈증을 그치게 한다. 이 물을 마시면 몸이 가벼워지고 살결이 고와진다고 하니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다.
◉춘우수( 春雨水: 봄빗물 )
정월의 빗물인데 그릇에 담아 뒀다가 약을 달여 먹으면 기운이 솟는다고 한다. 이 춘우수를 깨끗하게 잘 받아서 부부가 한 잔씩 마시면 신기하게도 임신을 하게 된다고 한다.
◉동상(冬霜: 겨울에 내리는 서리 )
물의 본질이 촘촘하고 독이 없어 뭉쳐서 먹으면 음주 후 열과 얼굴이 붉은 것, 감기 등으로 코가 막힌 것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박(雹: 우박)
장맛이 나쁠 때 이 물을 두 되쯤 장독에 넣어두면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납설수(臘雪水: 동지 뒤 셋째 술일인 ‘납일’에 내리는 눈)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주로 유행성 감기․폐렴․급성 열병․유행성 전염병과 음주 후의 신열, 황달(급성 간염) 등을 다스릴 뿐 아니라 일체의 독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매우수(梅雨水: 5월의 빗물)
이 물은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매우수를 마시면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어린이의 열과 목마름병을 없애준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벽해수(碧海水: 바닷물)
성질이 약간 따뜻하며 맛이 짠 게 특징. 그리고 독이 조금 있다. 끓여서 목욕을 하면 가려움증과 옴을 낫게 한다. 실제로 오늘날 해안 몇몇 도시에서는 ‘해수탕’이라는 온천 시설이 있어서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물을 한 홉 마시면 음식에 체해 헛배 부른 것을 토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물을 얻기 위해서는 큰 바다 한가운데에 나가 맛이 짜고 푸른 물을 떠다 쓴다고 한다.
◉옥정수(玉井水: 옥이 묻힌 산골의 물)
옥정수는 성질이 유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으니 오래 먹으면 몸이 윤택하고 부드러워지며 모발이 검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는 어른들이 자주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리수(千里水: 멀리서 흘러 들어온 물)
천리수는 성질이 유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으니 병후에 허약해진 몸을 다스리는 데 쓴다. 여러 번 저은 물로 약을 달이면 잡귀의 침범을 금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큰 비가 지나간 뒤의 강물은 산골의 뱀과 벌레 등 뭇 생물들의 독이 함께 따라 내려오므로 잘못 마시면 중독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요수(潦水: 심산유곡의 구덩이 물)
인적 없는 산골짜기의 흙구덩이 속에 괸 물이다. 마시면 비위를 가라앉히고 식욕을 돋워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냉천(冷泉: 차가운 물)
편두통과 등이 차가운 병, 울화증이나 오한 등의 증세가 있는 사람은 이 물로 목욕을 하면 잘 낫는다고 한다. 냉천의 밑에는 백반이 있으므로 물맛이 차고 시다. 7~8월경에 이 냉천으로 목욕을 하면 좋은데, 만약 밤에 하면 반드시 죽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
◉증기수(甑氣水: 시루 뚜껑에 맺힌 물)
이 물로 머리를 감으면 모발이 길어지고 검어지며 윤이 나게 된다고 한다.
◉추로수(秋露水: 가을 이슬)
성질이 부드럽고 맛이 달고 독이 없어 조갈증을 그치게 하고 몸이 가볍고 줄이지 않으며 살결이 고와진다.
◉온천수(溫泉水: 따뜻한 물)
모든 풍과 근육과 뼈의 경련, 피부의 버짐, 수족의 불수, 옴 환자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입욕하고 나면 허하고 피곤해지므로 약과 음식으로 보해야 한다. 끓는 유황물이 나오므로 모든 종기 류의 피부병을 다스린다.
◉지장수(地漿水: 구덩이에 부어서 뜬 물)
황토를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물을 그 속에 부어서 저어 흔들어 혼탁하게 한 후 한참 지난 뒤에 위의 맑은 물을 뜬 것이다. 성질이 차고 독이 없으므로 중독돼 번민하는 것을 풀고 그 밖의 모든 독을 풀어준다. 산중의 독한 버섯에 중독되면 반드시 죽고, 또 단풍나무 버섯을 먹으면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죽는데 오직 이 물을 마셔야 낫고 다른 약으로 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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