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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빈곤 문제 심각성 공유해야
비영리기구가 사업 운영 주체 돼야

지난 겨울 우리는 에너지와 얽힌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많이 접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난방을 하지 못해 얼어 죽었다거나 몸이 불편한 가난한 노파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헌옷가지를 태우려다 화재로 사망한 사연,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된 상태에서 냉방생활을 비관한 미혼모가 딸과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한 사연들이 들려왔다. 오래된 건물에서 누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고 전기요금 미납으로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 화재가 일어나 참변을 당한 사례들도 들린다.
어디 겨울뿐인가. 기후변화로 인한 여름철 고온현상으로 상당수의 노약자, 특히 저소득가정 노약자들이 열파피해로 사망하거나 고통을 겪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에너지 부족이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런 일들은 과연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나라인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에너지 빈곤을 제거하는 것을 주요한 에너지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에너지 빈곤이란 어떤 가구가 건강과 안락함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난방을 유지할 여유가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영국에서는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과 온수·조리연료·조명·전자기기 사용을 위해 지출하는 가정을 연료 빈곤가구라 부르고 있다. 에너지가 인간다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이기에 최근 세계적으로 에너지가 제공하는 편익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는 사회계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에너지 빈민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국가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가계연보’(2005)의 자료들을 검토해보면 소득이 낮을수록 에너지 지출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에너지 비용의 지출 규모는 증가하나 에너지소비지출 비용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한다. 극빈층인 35만원 미만 가구의 소비지출 대비 에너지비용 지출 비중은 10.67%인 데 비해 400만원 이상 가구는 1.82%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너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화석연료나 우라늄이 고갈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 수입되는 에너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에너지소비 증가로 에너지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고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활동이 다양한 형태의 환경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소비를 줄여나가면서 더 이상 줄이기 힘든 에너지는 에너지 효율향상과 에너지 절약을 통해, 그리고 보다 환경친화적인 재생가능에너지 소비를 확대해나가는 게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있다.
양극화돼 가는 현실에서 에너지 분야에서도 환경과 복지, 고용을 연계하는 생태적인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까. 답은 주저할 것 없이 ‘가능하다’다. 사회적 일자리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 때문에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말한다. 저소득층에 대해 에너지효율 향상사업을 실시해 에너지 사용에 따른 환경영향을 줄이면서 저소득층의 에너지 빈곤현상을 완화하고 저소득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석유파동을 경험하면서 저소득가구가 에너지문제에 취약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저소득층에 대해 비용효과적인 에너지 효율방안들을 추진하는 내후화 지원프로그램(WAP·Weatherization Assistance Program)을 시행해오고 있다. WAP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최대 규모의 에너지 효율 향사업으로 저소득층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건강과 안전을 보호할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WAP로 각 가구들은 해마다 평균 237달러를 절약하게 됐고, 100만 달러 투자당 52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자리 창출로 지역 세수기반이 확대되고 실업수당에 대한 부담이 감소했으며, 에너지안보가 강화되고 환경오염이 감소됨으로써 사업에 투자한 1달러당 3.71달러의 편익이 발생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에너지 빈곤 퇴치를 에너지정책의 4대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하고 2001년부터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에너지 빈곤에 대한 개념을 확립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공유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풀어가기보다는 현재 자활후견기관의 집수리 도우미와 같은 형태로 비영리기구가 사업의 운영주체가 되고 필요 재원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방식이 적절할 것이다. 관련 부처인 산업자원부와 건설교통부·보건복지부·환경부가, 또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연계해서 사업을 진행하되 사업의 운영주체는 비영리조직이 되고 사회적 일자리 형태로 꾸려가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프로그램의 시행 주체가 되는 비영리단체는 사업의 지속적 시행을 통해 다양한 노하우를 집적함으로써 에너지효율 향상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저소득가구를 대상으로 한 에너지효율 향상사업의 결과를 인근 지역사회가 인식하게 되면 일반 시민들의 에너지효율 향상에 대한 인식도 향상되는 파급효과 또한 가져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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