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깊은 경륜을 쌓아야 남보다 경쟁력도 높아진다는 적극적 행동을 강조한 의미다. 이와는 반대로 ‘남이 장에 가니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속담도 있다.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피동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국립수목원장으로 부임한 후에 직원들의 역량 강화 및 혁신 이해 촉진을 위해 가장 먼저 충북 음성의 농업인 이종민씨를 특별 강사로 초청했다. 그는 천지에 널린 고추로 성공한 농사꾼(이씨는 농사꾼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함)이자 신지식농업인 제1호다. 3만여 평의 비닐하우스 고추농사로 연간 1억여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그가 생산한 고추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구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농산물이 됐다.

그런데 나무와 풀과 꽃, 숲 등에 대해 조사·연구·보존 및 교육을 하는 수목원에서 이와는 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고추 농업인이 수목원 직원을 상대로 특강을 한다니 주위에서도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마치 ‘농림부에서 수목원장으로 부임했는데 혹시 고추 외에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표정이었다. 주위에서 조차 의아해하는데 수목원 직원들이 의아해하는 눈초리와 동요를 보인 것은 당연지사다.

강의의 주된 내용은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농사에 직접 적용해 1년 내내 재배할 수 있는 기술 개발, 다수확 생산, 고품질 태양초 맛을 낼 수 있는 건조방법 등을 개발한 과정이었다. 특히 매운 맛, 중간 맛, 순한 맛 등 세 가지 맛을 조절하는 기술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노하우다. 조그만 고추박물관도 지어서 교육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특강이 끝난 후 이씨를 강사로 그것도 첫 외래 강사로 초청한 배경을 설명했다. 요즘 다들 혁신, 혁신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바로 이종민씨가 혁신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이러한 메시지를 모든 직원에게 절실하게 느끼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혁신이란 어려운 개념도 아니요, 또한 수행하기에 힘이 드는 것도 전혀 아니다. 일상생활이나 직장 등에서 주어진 임무나 어떤 일에 대해 보다 짧은 시간, 보다 적은 인력, 비용, 또는 보다 나은 품질의 제품(정책 등)을 만드는 것이 바로 혁신인 것이다.

고추농사는 누구나 짓고 있지만 이씨는 곰곰이 문제를 생각해보고 보다 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도 하고 실제로 적용해보면서 나름대로 경험도 쌓고 노하우도 축적해 제1인자가 됐다. 정말로 농업의 프로페셔널이다. 수목원 직원들도 바로 이런 모습을 본받으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돼 혁신도 된다고 강조했다. 소나무를 연구하는 직원이면 소나무 재배·가공·분류방법뿐만 아니라 소나무와 관련된 것도 알아야만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된다고. 예를 들어 유명한 소나무 숲은 어디 어디에 있는지, 소나무를 주제로 그린 유명한 그림이나 연극·우표·노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찾아보면 수 없이 많다.

유대민족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는 탈무드는 “남이 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마케팅을 예로 들면 어느 누군가가 장갑가게를 열어 성업 중이면 절대로 그 옆에서 장갑 가게를 열지 않고 다른 상품, 예를 들면 보자나 양말·넥타이 가게를 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 장갑가게의 노하우와 격차가 이미 있기 때문에 신규 참여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다. 따라서 새로 장갑가게를 여는 사람은 장갑에서 1인자가 될 수 없으니 장갑 아닌 품목에서 1인자가 돼야 하고 그렇게 하면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음악에서도 학급의 한 학생이 피아노를 치면 자기 자녀에게는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를 배우라고 부모들이 지도한다는 것이다. 피아노를 따라하면 이미 출발선을 넘어 앞서 달려가고 있는 주자를 추월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골 고추 농사꾼으로부터 배우는 혁신의 진정한 모습이 수목원의 모든 직원에게 전파돼 이곳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원하며, 또 이뤄질 것을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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