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고시원 화재에 이어 안산에 있는 고시원에서 또 화재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고시원은 말 그대로 대학 주변에서 고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이용하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 화재를 계기로 고시원이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도시 저소득 근로자들의 주거공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나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몇 가지 사안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8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상을 입은 잠실 고시원의 경우에도 사고 피해자들 대부분이 저소득 근로자였다.

고시원은 1m도 안되는 복도를 두고 양쪽에 1~3평의 공간으로 돼 있어 다리도 제대로 펴고 누울 수 없다. 미로형 내부구조와 좁은 복도에 창문도 없고 벌집형 칸막이 방으로 돼 있다. 비상구등 안전시설도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

행정관청의 허가나 등록은 물론 신고할 필요도 없이 관할 세무서장에게 사업자등록만 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으므로 다수가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안전관리는 거의 부재한 상태였다. 주 출입구 반대편에 비상구를 설치하고 방마다 비상벨 설비, 휴대용 비상조명등, 소화기 유도등 등 안전시설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상당수가 이를 설치하지 않고 영업하고 있는 것이다.

신고가 필요 없다보니 관내 소방관서는 실내 인테리어, 실내장식물 등을 설치하고 영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소방검사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화재사고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열악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1월 현재 고시원은 전국적으로 4211개소가 영업 중이다. 지역별로는 서울특별시 2814개소(66.8%), 경기도 688개소(16.3%), 부산광역시 119개소(2.8%)로 대부분 도시지역에 밀집돼 있다. 특히 4211개소 중 75개소는 지하층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한 네티즌은 이번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잠만 자는 가장들이 고시원 생활을 많이 하는데 이번 일을 보면서 눈물만 난다고. 결혼한 지 8년 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이 네티즌은 서울에서 살면서 아이들이 아토피로 고생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자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지방으로 이사를 가고 남편은 서울서 고시원 생활을 하기로 했다는 것. 매주 야위어가는 남편을 보면서 안되겠다 싶어 자신도 일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열심히 살면 아이들은 아토피를 극복하고 남편이랑 다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죠?”라며 힘을 불어넣어 달라고 끝을 맺고 있다.

방화자로 드러난 노래방 주인이 현장 검증에서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이번 화재가 단순히 이 노래방 주인만의 책임이겠는가. 방화자와 건물주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인지 의문스럽다. 그동안 국민의 세금을 꼬박꼬박 받고 안전·소방 관리를 해야 하는 당국은 도대체 뭘 했다는 말인가.

어찌 보면 고시원 화재는 한 사람이 홧김에 저지른 방화라기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지 않은 당국의 무책임의 결과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방방재청은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우선 전국 4211개 고시원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하기로 했다. 또 비상구 등 안전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고시원은 내년 5월 30일 이전에 조기에 완비하도록 적극 계도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이들 중 화재 시 인명 또는 재산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고시원은 소방법에 따라 ‘개수·이전·제거, 사용 금지’ 등 강력하게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몸도 누이기 힘든 공간이지만 마음만은 미래를 꿈꾸고 편안할 수 있게 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세워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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