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 중에는 세계가 알아주는 우수한 인재가 많다. 지능이 뛰어나고 성실한 인재들이 과학·예술·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불철주야 노력해 이 작은 나라에서 이루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해내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사회에서 공동체 일원으로 ‘함께’하는 일들은 과연 어떨까.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남을 배려하는 문화는 아쉽게도 개인 능력의 개발수준만큼 발전하지 못해 보인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입시 위주로 적용되는 공교육과 잘못된 가정교육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특히 수년 전부터 경제적 어려움이 사회 전반에 가중되면서 가정의 일원들이 모여서 하는 대화들은 어떻게 돈을 더 벌까, 어떻게 출세할까가 주류를 이뤘다. 내가, 내 자식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질서를 지키고 어떻게 양보하고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국가 차원의 저 출산과 핵가족 장려 정책으로 인구가 줄면서 ‘내 자식 떠받들기’가 유행처럼 퍼져간 때가 있었다. 한 집에 서넛씩이던 아이들이 하나 혹은 둘이 되면서 원칙 없는 관대함과 과잉보호가 뒤따랐고, 어른 공경과 공동 생활공간에서의 질서와 도덕 같은 것들은 관심 밖에서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하려 치면 ‘네 자식에게나 가르치라’는 기막힌 응수가 돌아올 뿐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20~30대로 성장했고, 다시 그들의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무질서의 대표적 장소가 대중목욕탕이다. 이용자들의 불평에 각종 물 절약 설비는 슬며시 사라졌고 여기저기서 애들도 어른들도 샤워꼭지 물을 틀어 놓고 딴 짓들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줄줄 세고 있는데 아무리 물 부담금을 늘이면 무엇 하겠는가. 이런 부분은 정부와 지자체가 거액을 들여서라도 지속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본지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해왔듯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도록 해야 한다. 멋진 새 차의 창문이 스르륵 열리고 담배꽁초며 쓰레기, 심한 경우 쓰레기가 가득 담긴 봉투까지 집어던지는 행태도 별 놀랄 일이 아니다. 차 밖으로 온갖 쓰레기 버리면서 내 차만 깨끗하면 된다는 생각이 어제 오늘 사이에 굳어졌겠는가. 어린 시절부터의 무책임한 방치가 쌓여 결국 이런 비정상적 수준으로 자라난 것 아니겠는가.
가정에서의 교육, 체험적 생활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입시위주의 교육 틀에서 벗어나 생활과 환경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도록 해야 한다. 버리고 나서 치울 방법을 찾고, 더럽히고 나서 하얗게 만들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많은 이들이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아이들을 공부시킨다. 돈 들여 아이들을 학원에 넣고 입시를 겨냥한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몰아간다. 세상은 갈수록 더욱 각박해지고 서로 믿고 돕기보다는 살벌한 경쟁에 익숙해져 가는데 이런 사회에서 내 아이가 과연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학교에서의 생활환경교육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도롱뇽, 생태계 등 자연환경교육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부족한 공동체생활의 질서와 규칙, 나눔과 조율의 자세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물과 기름처럼 분리돼 서로 탓하는 문화를 벗어나게 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우주에서 어느 날 날아든 혹성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 둘씩 고치고 바르게 노력해야 개선이 가능하다. 말을 앞세우는 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익히고 실천하는 생활로 정착하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영국에서는 굳이 내 아이들을 직접 훈계하지 않아도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바른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녀교육이 수월했다는 어느 유학생 부부의 체험담은 참으로 부러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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