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소중한 목숨을 끊는 황당한 일이 계속 이어지면서 세상이 시끄럽다. 그것도 일반인이 아니라 TV나 영화를 통해 이른바 ‘잘 나가던’ 사람들이라 궁금증은 더하다. 도대체 왜 그런 끔직한 일을 저질렀을까. 아니 저지를 수밖에 없었을까.
바로 우울증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답을 줬다. 평소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명랑하고 남에게 기쁨과 희망까지 주던 사람이 성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우다 결국 파장에 이르게 한단다.
우울증의 위험은 심지어 매일 그 대상자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고, 또 갑작스러운 사고를 경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로 인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심지어 오랜 종교생활이 몸에 배고 굳건히 정신을 무장한 사람들도 야밤 도적처럼 다가오는 이 검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큰일을 당하기까지 한다. 차라리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거나 대형 교통사고로 생명이 위태롭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보려고, 또 살려보려고 있는 힘, 없는 정성 다해 대응해 보겠지만, 이렇게 소리 소문 없는 공격에는 방법이 없다. 그저 예방이 최선이다. 자주 돌보고 대화하고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있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환경에도 우울증과 같은 부지불식간의 치명적 사고를 초래하는 ‘악성 바이러스’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석면이다. 본지의 계속보도에 이어 최근 방송을 포함한 각종 매체들이 다시 집중보도한 바 있는 지하철 석면 문제는 그야말로 야금야금 사람들의 생명을 좀먹는 골칫덩이다. 그런데도 관계기관의 대책은 명확지 않고 더더욱 석면에 늘 노출돼 있는 1000만 지하철 이용객들조차 남의 일 보듯 한다. 아직 내 몸에 이상이 없으니까, 내 아이들이 별 탈 없어 보이니까 설마 별일 있겠나 하고 넘어간다.
석면의 인체 내 잠복 및 발병은 수십 년에 달한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매일 의식 없이 들이마시는 것들이 몸속에 쌓이다가 어느 날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듯 맥없이 쓰러져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슬레이트나 석고보드 등 건축물의 내외장재 원료로 우리나라에서 지난 오랜 세월 애용돼 온 석면은 미국에서는 1급 발암성물질로 지정돼 있다. 소량의 가루만 흡입해도 발병 후 1년 내에 사망하는 치명적 중피종암을 유발할 수 있다. 과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막연한 이유만을 들어 이토록 위험한 물질을 사방에 노출시켜 놓고도 태연 자작하는 관계자들은 ‘우울증 바이러스’를 뿌리고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사람들과 같다.
재개발 붐을 타고 진행되는 무차별한 철거는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나게 한다. 온갖 것들 다 함께 까부수며 온 사방에 석면가루 날리면서도 천문학적 비용문제니, 현실적 관리 불능이니 등 빛 좋은 변명으로 포장하곤 아무 조처도 없이 하는 공사가 대부분이다.
석면에 대한 경고와 위험성 부각은 아무리 여러 번 해도, 아무리 심각하게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도 지하철에서 숨쉬며 걷고 뛰고 웃으며 마시는 공기 속에 석면이 포함돼 내 식구들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아니, 책임이란 말조차 사치스러운 이 만행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 석면대책특별법을 만들든, 석면조사특위를 구성하든 그 어떤 방법이라도 조속히 마련하고 시행해서 어느 날 조용히 다가올 이 ‘죽음의 바이러스’를 미리 제거해야 한다.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사전예방인가 사후처리인가로도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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