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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작가 ‘묻다’ 출간기념 사진전②]
가축 살처분 매몰지···죽음 없는 무덤
1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전시
문선희 작가가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묻다’를 펴냈다. <사진=이채빈 기자>

[갤러리나우=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문선희 작가는 3월6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가축 살처분 매몰지를 찾아다니며 기록한 사진수필집 ‘묻다’ 출간기념 사진전을 열었다.

“이 땅 아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문선희 작가 ‘묻다’ 출간기념 사진전 <사진=이채빈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대지가 펼쳐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게 대체 뭐지’ 궁금증을 갖고 작품을 자세히 살펴봤다. 작품 옆에는 숫자만 적혀있다. 얼핏 보면 안개꽃 같기도 하고, 추상적이면서 아름답다.

전시장을 나갈 때 비로소 이 작품의 정체를 알게 된다. ‘이 사진들은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 3년 후를 촬영한 것이며, 제목으로 쓰인 숫자들은 그 땅에 묻힌 동물들의 수입니다’

작품명 11800 <사진제공=책공장더불어>

문선희 작가는 가축 살처분 문제에 관심을 둔 이유에 대해 “특별하거나 개인적인 사정 같은 건 없었다”고 말했다. 그저 뉴스를 통해 본 인간의 잔혹함에 충격을 받았다. 동물을 쏟아버리듯 매장해버리는 모습 말이다.

문 작가는 “그러던 중 우연히 ‘3년이 지나면 매몰지가 사용할 수 있는 땅이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3년 만에 땅이 회복된다는 사실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며 “직접 눈으로 매몰지를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한 후 100여 곳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었지만, 매몰지를 밟았을 때 물컹한 느낌과 고약한 냄새, 하얗게 핀 곰팡이, 끈적이는 액체를 보니 분명히 이 땅 아래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저 동물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시작한 일”

문선희 작가 <사진=이채빈 기자>

그러나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문선희 작가는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애꿎은 농장 주인만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이 문제를 알리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병든 땅을 필름에 담았다. 동물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제의(祭儀)의 의미로 시작한 일이었다. 문 작가는 “가축 살처분에 대한 진실과 합리성을 가장한 법과 제도를 알기에 뭐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진실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자 사진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이기주의에 함몰된 생명

작품명 84879 <사진제공=책공장더불어>

그럼에도 문 작가가 전시회를 연 이유는 환경문제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방문한 매몰지 중 오염상태가 심각한 곳(오리 8만7000여 마리가 묻힌 곳)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관찰했다. 아마도 병든 땅이 잘 낫고 있는지 걱정했을 것이다.

문 작가는 “어느 날 비닐 밑에 올라온 초록색 풀을 보고, 이처럼 참혹한 현장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걸 보면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청량했던 초록색 풀은 하얗게 변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동물 살처분, 경제 논리로 일어난 일

문선희 작가 ‘묻다’ 출간기념 사진전 <사진=이채빈 기자>

동물들이 살처분되는 장면을 보면서 누구나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문선희 작가처럼 끝까지 파고들고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예술로 동물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냈다. 작가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문 작가는 “신념과 가치관, 철학으로 삼고 있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며 “우리는 경제성·합리성·효율성이라는 것에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 살처분은 경제 논리로 일어났다”며 “생명이라 생각하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제역은 치사율이 1%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 보름 만에 회복될 수 있는 경미한 바이러스다. 그러나 정부는 구제역 청정국 유지를 위해 건강한 가축까지 살처분했다.

‘마음에 불이 켜다’ 세상을 바꾸는 일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을 담은 책 ‘묻다’ 표지 <자료제공=책공장더불어>

문선희 작가는 이 작업으로 참혹한 현장을 마주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문 작가는 “전시회를 열면서 관람객들이 함께 동물을 걱정하고, 살처분 방식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을 봤다”며 “그 순간 마음에 불이 켜졌고, 그분들 마음에도 불이 켜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문 작가는 우리 모두가 동물에 대한 사랑과 연민 등 중요한 가치를 품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바빠서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그는 이번에 출간한 ‘묻다’에 대해 “잠시 꺼진 마음에 불을 켜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봄처럼 부드러운 미소였다.

출간기념 사진전은 오는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책값의 6%는 참사랑동물복지농장에 기부한다. 문 작가는 “책 한권의 기부금액은 닭 한 마리의 15일치 사료”라고 말했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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