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창살’과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원시적 수준
생물다양성 보전 및 교육은 뒷전, 동물복지는 요원

[국회=환경일보] 선진국의 동물원들이 생존을 위해 단순 전시와 오락시설에서 벗어나 생물다양성 보전과 연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바꿔나가는 가운데 우리나라 동물원만 여전히 창살과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원시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월30일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공영동물원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안방에서 호랑이를 키우는 격”이라며 공영동물원조차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웨어 조사 결과 공영동물원 10곳 중 최소 6곳에서 외관상 이상이 있거나 질병이 의심되는 동물이 관찰됐고, 조사 대상 전체에서 정형행동, 침울함 등을 보이는 동물이 다수 관찰됐다.

정형행동은 동물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지만 기본적으로 사육환경 개선이나 훈련, 약물치료 등 적극적인 질병 예방 및 감소 조치는 부족했다.

2013년에는 김해의 한 동물원에서 고작 30~40㎝에 불과한 짧은 목줄에 원숭이를 묶어 전시해 논란이 됐다. <사진제공=동물자유연대>

인간 편의 중심의 동물원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물복지는 사치에 불과하다. 최근 리모델링이나 증축하는 시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일부 시설은 콘크리트 바닥과 쇠창살로 된 사육장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고 개장 이후 한 번도 시설 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동물원도 있었다. 이로 인해 식생, 구조물 등 자연스러운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가 부족했다.

이처럼 바닥을 콘크리트나 타일로 조성하는 것은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동물의 생태를 기준으로 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와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게다가 좁은 공간에서 동물을 너무 많이 사육하는 바람에 동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소음 측면에서도 부족함을 보였다. 특히 공원의 일부로 운영되는 곳일수록 놀이기구와 각종 행사 등으로 소음이 컸고, 미성숙한 관람 문화로 인한 사람들의 소음과 음악 소리도 매우 시끄러웠다.

그렇다고 동물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물이 본래 살던 곳과 최대한 비슷하게 사육시설에 재현해야 동물이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대부분 사람이 관찰하기 쉽도록, 관리하기 쉽도록 시설을 조성했다.

또한 수의학적 처치 등 관리를 쉽게 하고 풍부화 할 수 있는 긍정강화 훈련은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전주동물원 등에서 특정 동물 일부에만 운영됐고, 일상적인 풍부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숨을 곳조차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 있는 다람쥐원숭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받고 있다. <사진제공=어웨어>

생물다양성 보전 연구 없어

현대 동물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생물다양성 보전 측면에서도 매우 부족했다. 국제멸종위기종을 보유한 동물원조차 대부분 보전 연구를 하고 있지 않았고 유전적 단위 종 관리가 부실해 종 보전을 저해하고 있었다.

또한 정확한 유전적 동정을 위한 인력, 시설, 장비가 미흡해 아종 간 교잡이 있는 가계의 시베리아 호랑이가 번식하고 있었고 군집 사육하는 종은 근친교배 관리가 미흡해 근교약세로 추정되는 개체도 관찰됐다.

동물을 구경거리가 아닌 생명으로 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태교육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많았다.

6개소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동물이 무엇을 먹는지, 새끼를 몇 마리나 낳는지 등 자연사에 대한 정보 제공에만 치우칠 뿐 야생동물 보전 필요성, 야생동물과의 올바른 관계,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행동 등 보전 교육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은 전무했다.

야생동물보건프로그램 황주선 수의사는 “진짜 생태교육이라면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원에서 고릴라를 보고 그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받았다면, 핸드폰을 바꿀 때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핸드폰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고릴라 서식지를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상돈, 이정미, 한정애 의원과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주최로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발표 및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김경태 기자>

관심도 전문성도 없는 지자체

현재 등록된 시설 대부분이 실내동물원, 체험시설 등의 오락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영동물원 역시 시설이 낙후되고 관리가 미흡하다.

공영동물원의 운영이 엉망인 것은 관심과 전문성의 부족 때문이다. 공영동물원을 운영하는 시설공단에 동물원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없고 공원의 목적 또한 동물복지가 아니라 관람하는 사람들의 편의가 우선이다.

지난 2017년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되고 있지만 허가제가 아닌 형식적인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소관부처인 환경부 관리감독 책무조항이 미비하다 보니 공영동물원 관리에 관여하기 어려운 구조이며, 그나마도 육상동물을 맡는 환경부와 해양생물을 맡는 해양수산부로 이원화돼 일관적인 정책방향 수립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일반 야생동물은 반려동물, 국제멸종위기종(CITES)과 달리 국내 판매와 유통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없어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영국, 동물 판매 시 허가 필요

2017년 동물카페에서 여러 동물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바람에 코아티가 다른 동물에게 공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물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진제공=어웨어>

우리와 달리 EU, 미국 등은 기존의 동물원 시설을 없애는 곳이 늘고 있으며 야생동물 판매를 등록, 허가제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야생동물의 판매가 일반적으로 금지돼 면허 없이 야생동물을 판매하면 법에 의해 기소될 수 있고 최대 500파운드의 벌금을 내야 한다.

또한 영국은 동물복지 5대 원칙에 입각 종, 나이, 상태 등에 따라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부속서에서는 종별 사육화경 및 관리 사양을 규정하고 있다.

EU 역시 ‘동물원 지침 모범사례’를 운영하고 있으며 스위스는 ‘동물복지법 동물복지조례’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미국 디트로이트 동물원의 버만 인문학교는 자연환경이 위기에 처했다는 핵심 신념을 바탕으로 ▷외래동물을 애완동물로 기르는 행위(밀렵 및 야생동물 밀거래 조장) ▷서커스‧로드사이드 동물원(유사동물원)‧로데오 등은 동물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사람의 이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교육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동물단체들에게 동물체험시설은 동물학대시설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사진제공=핫핑크돌핀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어느 나라에 있건 같은 동물이라면 선호하는 사육환경도 같다.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사육을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비판했다.

또한 “동물원‧수족관법의 동물원 정의에 생물다양성 보전 기관임을 명시해 야생동물을 보전 증식하거나 생태습성을 조사 연구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전시‧교육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동물원‧수족관 등록제를 허가제로 강화해 동물원의 수준을 상향평준화 하고 침팬지, 코끼리 등 적절한 사육환경을 유지하기 어려운 종은 특수보호종 동물로 지정하는 등 사육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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