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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반발에 ‘재포장 금지’ 퇴보하나“영업의 자유와 소비자 결정권 침해” 제조업계 반대
“포장재는 제조업체 몫” 유통업계는 책임 회피 급급

[환경일보] 최근 일부 언론들은 “환경부의 ‘재포장 금지’ 때문에 묶음할인이 불가능해져 맥주가격 등이 오를 것”이라며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는 규제를 가하려는 환경부”라고 비난했다. 재포장 금지가 묶음할인 금지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였는데, 이는 명백한 오보였다.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는 재포장 금지 예외 규정을 설명하면서 맥주를 사례로 들었다. 해당 정책을 비판하기에 앞서 환경부가 배포한 자료를 한번이라도 읽어봤다면 맥주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주장은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대신 해명자료를 내놓고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다며 꼬리를 내렸고 7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재포장 금지는 내년으로 미뤄졌다.

묶음포장 사례(왼쪽)와 증정상품 재포장 사례 <자료제공=환경부>

정부가 발표한 재포장 금지의 핵심은 묶음할인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환경부가 묶음할인을 금지할 권한도 없다. 다만 묶음할인 상품을 다시 포장하면서 발생하는 자원의 낭비를 막자는 것이다.

끼워주기, 한개 더 주기는 상품 하나를 더 주면 된다. ‘1+1 이벤트’에서도 소비자가 골라서 1개를 더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편의점에서는 이벤트 상품의 경우 표시를 해놓거나 직원이 바코드를 찍으면 한개 더 가져가라고 하고 있다.

재포장은 포장의 고유 기능인 제품의 안전이나 위생 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판촉용 포장재 줄이기 캠페인(그린마일리지)을 통해 포장재를 줄인 결과, 기업은 연간 840억원 이상 재포장 비용을 절감했고, 연간 6300톤 이상 포장재를 감량한 효과를 얻었다. 그렇다면 업계 입장에서도 재포장 금지는 환영할만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환경단체들은 2일 서울 이마트 성수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통 3사의 재포장 금지를 촉구했다. <사진제공=녹색연합>

책임 회피 급급한 ‘슈퍼갑’ 유통업계

3일 양이원영‧안호영 의원과 환경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과대포장 줄이기 토론회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재포장 금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책임을 회피했다.

유통업계를 대표해서 나온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이광림 상무는 “환경부 재포장 금지는 협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유통업계는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재포장의 주체는 제조업체”라며 책임을 미뤘다.

유통업계는 판매만 할 뿐, 포장은 제조업체 몫이니 유통업계와는 상관없다며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형마트, 백화점 등의 대형유통업체는 그야말로 ‘슈퍼갑’이다. 물건을 납품해야 하는 제조업체들은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통업체 요청에 따라 판촉사원을 파견하거나(물론 인건비는 제조업체 몫)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할인을 해야 한다.

이 같은 행위를 공정위가 불법으로 규정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슈퍼갑의 위치는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제조업체가 과도한 포장재를 줄이라는 유통업계의 ‘요청’을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4월16일 인천 롯데마트 송도점 앞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담은 높이 5m 대형 카트 모형을 설치하고 롯데마트의 플라스틱 감축 계획 공개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제공=그린피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 월마트(Wal-Mart)의 ‘포장재 5% 줄이기 운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대형유통업체가 제조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일삼으며 가격 인하를 요구할 때, 미국 월마트는 포장재를 줄이기 위한 기본방침(7R)을 제시했다.

포장재 5% 줄이기 운동의 기대효과는 ▷수백만 파운드의 쓰레기 매립 방지 ▷66만7000메트릭톤의 CO₂ 저감 ▷23만1000대의 트럭 사용 절감 ▷32만3000톤의 석탄 사용 절감 ▷6670만 디젤 연료 절감 ▷109억8000만 달러의 비용 절감(월마트 단독으로 34억 달러 절감) 등이다.

한국건설생활환경연구원 오재영 센터장은 “업계에서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2013년 포장재 줄이기가 중단됐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반대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2013년까지 강행한 것”이라며 “2013년 이후 본래 상태로 되돌아갔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환경문제는 한발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물론 재포장 금지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는 귀 기울일만한 의견이다. 대형마트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의 90%가 중소기업들인데,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을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

양이원영‧안호영 의원과 환경부 주최로 과대포장 줄이기를 윟나 정책 토론회가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사진=김경태 기자>

식품업계 ‘분담금으로 해결해야’

유통업계가 책임을 미뤘다면 식품업계는 재포장 금지가 필요 없다며 대놓고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유봉준 본부장은 “재포장 금지 대상이 모호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혼란이 빚어졌다. 영업의 자유와 소비자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재포장 금지 대신 분담금 제도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폐기물 제한은 생산자 부담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울러 “재활용 처리업체의 영세성으로 분담금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을 대변하는 정책이 필요한가”라며 “친환경 포장재 개발 지원, 소비자 분리배출 지원, 일본의 재활용 정책처럼 페트 구분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분담금이 재활용분담금을 말하는 것인지, 폐기물분담금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둘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도,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재활용분담금을 기업이 지불한다고 할 때,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분담금을 비용으로 간주하고 가격에 포함시킨다.

예를 들어 100원에 판매하는 물건인데, 분담금을 10원 납부해야 하는 경우, 제품가격을 110원으로 올리면 기업은 아무런 손해가 없고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심지어 주류의 경우 공병보증금(반납하면 돌려받는 돈) 인상을 이유로 보증금 인상 금액보다 더 많은 가격을 인상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분담금을 냈으니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말은 근거가 부족하다.

홍정기 환경부차관은 “공공선별장에서 40~50%는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분리배출만 잘하면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기업이 낸 분담금만으로는 처리비용을 모두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선별장을 만들고 각종 처리시설을 만들어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분담금만으로 쓰레기가 처리된다는 말은 현실성이 없다.

이에 대해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이채은 과장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통해 돈을 내고 있으니 책임 다했다고 할 수 있는가? 기업은 폐기물 처리에 필요한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고 있다. 공공에서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재활용은 부분적인 해결책일 뿐 정답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고개 숙인 환경부도 반성해야

비식품 제조업체를 대표해서 나온 애경산업 김남수 부문장은 “제품을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포장의 기본적인 기능을 제외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재포장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인 합의는 이미 끝났고 실천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더 이상의 논란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며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소비자를 대표해서 나온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이사장은 한발 더 나아가 재포장 금지에 소극적인 업계와 언론을 비판했다.

그는 “과대포장은 소비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가져봐야 쓰레기에 불과하다. 1+1 제품을 그냥 주면 되지, 왜 담아서 주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유통업계의 책임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유통업계가 얼마나 힘이 얼마나 센가? 가져오라고 명령하면 다 따르지 않는가? 그런 말 하지 마시라”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에 대해서도 “환경부도 반성해야 한다. 상품을 재포장 하지 말자는데, 언론사가 난리 치니까, 환경부가 ‘아 그렇습니까?’ 하고 물러서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꼬집었다.

자발적 협약, 절반만 이행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환경부가 규제 대신 선택한 자발적인 협약을 준수하고 있는가? 현실은 ‘절반은 그렇지만, 절반은 그렇지 않다’이다.

환경운동연합이 환경부와 ‘포장재 재질·구조 개선 자발적 협약’을 맺은 19개 업체의 이행 실적을 확인한 결과, 목표치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19개 업체를 대상으로 기업별 이행 실적을 요구한 결과, 9개 기업은 협약이행 실적을 공개했지만, 10개 기업은 답변이 없었다. 답변을 제출한 9개 기업은 포장재 재질 구조개선에 있어 모두 높은 수준의 실적을 달성했다.

환경부가 밝힌 개선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3개 기업을 포함해 환경운동연합에 답변을 제출하지 않은 10개 기업의 경우, 자발적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식품 2차 포장, 폭발적 증가

2008년 유통‧제조업체와 환경부가 2차 포장 절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었고 그 결과 일회용 포장이 감소했다. 그런데 유독 식품의 2차 포장만 급격하게 증가했다.

재포장 금지는 ‘정상적으로 생산된 제품을 다시 포장하는 행위’인데 정상적인 생산이라는 단어가 모호하기 때문에 사실상 제조업체가 하는 포장에 대해서는 규제할 장치가 없다.

연세대학교 패키징학과 서종철 교수 역시 종합제품의 범위가 너무 막연하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환경부는 공장에서 생산된 정상적인 제품에 대해서는 재포장 금지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정상적인 제품에 대한 해석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종합제품은 4회까지 포장이 가능한데, 범위가 너무 넓어서 규제를 피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종합제품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재포장 금지가 2차 포장은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재포장이 금지되면서 2차 포장에 대한 면죄부가 부여될 우려가 있다. 과도한 포장을 규제로 막는 것은 매우 어렵다. 소비자 운동을 통해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생활폐기물 35%는 포장재

양이원영 의원은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는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미비, 사회적 합의 부족 때문”이라고 밝혔다.

생활폐기물 35%가 포장재다. 환경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가정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6년 966톤에서 2018년 1226톤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합성수지 폐기물 역시 2017년 1203톤에서 2018년 1295톤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포장재 폐기물 발생량은 해마다 증가해 2014년 4위를 기록했는데, 다른 나라들이 감소하거나 소폭 증가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분리배출을 철저히 하고 재활용을 하는 것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22.7%에 불과하다.

2018년 쓰레기 대란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분리배출만 잘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2018년 이후 환경부가 대안 마련에 나섰고 폐기물 발생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업계와 언론의 태도는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게다가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는 기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플라스틱이 바로 석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홍수열 소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에너지 전환과 더불어 원료로서의 화석연료 퇴출이라는 두개의 축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에너지 전환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189개 석탄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양과 맞먹는 양”이라고 지적했다.

김경태 기자  mindadd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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