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과정평가학회 공동학술회···전문적 판단 어려움 토로
인증기관 설립·인재양성 지지부진, 정부 역할 필요성 입 모아

LCA에 대한 산업계의 고민이 깊다.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온실가스 관리 체계의 변화가 강조되며 LCA(life cycle assessment, 전과정평가) 기법이 장려되고 있으나 정부 정책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계 등은 정부의 역할을 기다리며 먼 산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LCA는 정책 시행에 따른 효과를 정량화하는 데 용이한 도구다. 조건을 다양하게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후변화 등 불확실 요인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중요한 환경정책에 필수다. 사업장(site) 중심의 관리에서 전과정(net) 중심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1회용품 사용 억제 정책을 펴기 위해선 다회용기 사용 증가의 시나리오를 분석해야 한다. 원료의 생산부터 폐기 및 재활용까지 전과정을 봐야 한다. 전기차 폐배터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재활용 방법별로 정량적인 시나리오가 요구된다.  

지난 11월30일 학계 및 연구기관, 산업계 등이 패널로 모인 ‘한국전과정평가학회-한국환경경영학회 공동학술발표회’(이하 학술회)에선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각 부처가 나서서 LCA 전문 인증기관을 만들고 인재양성에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LCA 관련 규제를 만들 때 체계적으로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접근 방식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량적 시나리오 반영된 환경정책 요구 

산업계 쪽은 환경개선의 효과를 정량화하는 등 LCA 과정의 전문적인 판단에 어려움을 드러냈다. 허영채 삼성전자 파트장은 “배터리 칩의 탄소배출량 정보를 2027년부터 공개하도록 됐지만, 탄소배출량을 산정할 기준이 많이 없고 제품별로 세분화 돼있지도 않다”고 했다.

이어 “환경경영을 통한 개선 효과를 정량화하는 이런 부분은 보편적인 잣대론 될 수 없다”며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다. 전문가를 내재화해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품 모델별 탄소배출량 정보나 LCA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도움을 청하는 분위기가 산업계엔 팽배했다. 안윤기 포스코 상무는 “기준이 될 수 있는 전문 인증기관 양성에 힘을 모아야 하는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LCA 자문을 해주는 컨설팅 업계 사이에선 정확히 뭘 요구하는 지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객사로부터 받은 요구에 대해 기업들이 자문을 청해오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정작 어떤 것을 기업에 원하는 가에 대한 개념 정립부터 안 된 상태란 것이다.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LCA와 Scope3(온실가스 간접배출원)를 같은 개념으로 혼동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LCA를 요구받았다고 해서 확인해보면 실제론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요청하는 경우인 때가 많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시스템적으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11월30일 열린 한국전과정평가학회-한국환경경영학회 공동학술발표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최용구 기자  
11월30일 열린 한국전과정평가학회-한국환경경영학회 공동학술발표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최용구 기자  

이러한 산업계의 난맥상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신호정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실장은 “기업의 인력들이 해외 기획사가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굉장히 오랜기간 데이터를 축적한 해외의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비교된다”면서 “정책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동향도 봐야 한다. 정책은 맞든 틀리든 정책 입안자들의 의지로 실행되지만 시장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적 대응, ‘인적 쇄신’ 전제돼야 

권오철 자원순환기술원 실장은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변화를 주려는 타이밍에 또 다른 규제 정책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LCA 기법에 대한 표준화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어떠한 정량적 수치에 근거한 정책을 수립해 달라”고 했다. 

곽인호 엔디렉션 대표는 “LCA를 활용한 정책 효과 분석이 일부 특정 정책에만 한정돼 있다. 정책 효과 분석에 특화된 LCA 수행방법론을 만들려면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학술회는 ‘탄소중립 및 순환경제 정책에서의 LCA 활용’을 주제로 진행됐다. LCA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과정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에 대한 정부 주도의 개편방향이 제시됐으며 연구계는 노후된 LCI DB 개편 및 구축 사업의 진행 상황 등을 설명했다.

다만 대응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귀를 열고 의지를 보일 수 있겠냐는 데는 물음표만 달렸다. 기존 전문가들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발언도 있었다.

패널들의 토론을 지켜보던 업계 한 관계자는 “전문인력 양성이 극히 부족하다. 지금의 전문가들이 과연 전문성 있는 수준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우리가 아는 것들은 이미 다른 나라도 모두 알고 있는데 과거에 학습된 LCA 정보만 가지고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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