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으로 재활용 대신 시멘트공장 원료 사용 ‘쏠림’ 심각
시멘트업계 폐기물 독점으로 재활용‧소각업계 고사 위기

9월22일 강원도 한 시멘트 공장 굴뚝에서 뿌연 분진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9월22일 강원도 한 시멘트 공장 굴뚝에서 뿌연 분진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환경일보] 각국이 물질의 생산부터 재활용, 폐기까지 ‘자원순환 고리’를 구축하는 순환경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소비 일변도에서 벗어나 재활용, 재사용을 통해 소비재를 만들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고, 불필요한 자원 낭비도 막겠다는 취지다. 분리수거가 실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와 견줘도 순환경제에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들의 노력과 달리 우리 환경부는 순환경제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들여 분리수거 한 폐기물은 일부만 재활용되고 대부분 소각되고 있다.

특히 2019년 ’의성 쓰래기산‘ 사태 이후 환경부가 대량의 폐기물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해 기존 자원순환 방식인 ’재활용-소각-매립‘의 체계를 따르지 않고 시멘트 업계에 폐기물 처리를 맡기면서 순환경제의 틀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멘트 업계는 화석연료인 유연탄 대신 폐기물을 소성로 연료로 대체해 탄소중립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까지도 단순 연료로 소진되는 것은 순환경제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시멘트 업계로 폐기물 물량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기존 재활용·소각 업계는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기조에 따라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열분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한 석유화학 업계가 원료인 폐플라스틱을 시멘트 업계가 싹쓸이해 가는 문제로 업계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뚜렷한 폐기물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국내 순환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환경부 부서인 ’자원순환국‘을 ’시멘트국’으로  개명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9월22일 폐기물을 싣고 강원도 한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간 트럭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9월22일 폐기물을 싣고 강원도 한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간 트럭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시멘트 공장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요”

22일 오전 강원도 한 시멘트 공장. 각종 폐기물을 실은 25톤 트럭이 줄지어 시멘트 공장에 쓰레기를 부은 뒤 돌아갔다.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간 폐기물은 시멘트 소성로의 불을 때는 연료로 사용된다.

같은 시각 공장 굴뚝에선 뿌연 분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반 소각장과 달리 시멘트 공장은 같은 폐기물을 태워도 대기오염 배출기준이 낮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허술하게 걸러지고 있다.

공장 인근 주민은 “석회석과 유연탄만 갖고 시멘트를 만들 때도 공기가 매캐해 숨 쉬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전국에서 오는 쓰레기까지 가져다 태우면서 주민들 건강을 사지에 몰아넣고, 심지어 더 태우겠다고 공사 중이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시멘트 소성로로 들어가는 가연성 폐기물 양은 2019년 136만6000톤에서 2020년 160만7000톤, 2021년 224만1000톤으로, 이는 가연성 폐기물 재활용률의 10%(2021년 기준)에 해당되며, 연평균 증가율은 28.1%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반면 시멘트 업계는 현재 가연성 폐기물 사용량의 유연탄 대체율은 30% 수준이라 독일 등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다는 입장이다. 한발 더 나아가 최종 100% 대체를 목표하고 있어 시멘트 공장의 가연성 폐기물 처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시멘트 소성로로 들어가는 가연성 폐기물량이 계속 늘어나는 원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시멘트 업계의 폐기물 처리를 ‘재활용’으로 인정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성로에서 폐기물을 태울 때 만들어지는 ‘소각열’이 ‘열적 재활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는 시멘트 소성로에서 폐기물을 태우는 것은 재활용이 아닌 ‘회수(Recovery)’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소각장에서도 시멘트 소성로와 마찬가지로 가연성 폐기물을 태우는 과정에서 열에너지가 발생하지만 ‘열적 재활용’을 적용하지 않고 형평성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간 폐기물은 시멘트 소성로의 불을 때는 연료로 사용된다. /사진=환경일보DB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간 폐기물은 시멘트 소성로의 불을 때는 연료로 사용된다. /사진=환경일보DB

시멘트 업계는 대기오염 배출기준에서도 특혜를 받고 있다. 초미세먼지의 주범으로 폐기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대표적 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의 배출기준은 일반 소각업계가 50ppm, 시멘트는 270ppm으로, 5배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2015년 1월1일 이후 신규 시멘트 시설에는 80ppm의 배출기준을 적용받지만, 국내 모든 시멘트 업체는 2007년 1월31일 이전에 설치된 시설이기 때문에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는 업체가 한 곳도 없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국내 시멘트 업계의 대기오염 배출기준은 매우 느슨하다. 77ppm을 적용받는 독일의 경우 질소산화물뿐만 아니라 탄화수소, 불화수소까지 정부가 실시간 관리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가측정 방식으로 자율규제에 맡기고 있다.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비롯해 각종 쓰레기가 시멘트 공장으로 쏠리면서 그 피해는 지역 주민들이 받고 있다.

월등히 낮은 대기오염물질 배출기준 때문에 환경오염 심각
시멘트 공장에 폐기물 처리 전가··· 환경부의 행정 편의주의

최근 국회에서 열린 ‘쓰레기 시멘트’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과거에도 시멘트 분진에 고통받았던 주민들이 이제는 하루에 수십대씩 들어오는 쓰레기 차까지 지켜봐야 한다”며 “소각장 지을 땐 주민들에게 동의라도 구하는데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가는 쓰레기는 같은 폐기물 처리인데도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환경부가 폐기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을 더 철두철미하게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느슨한 규제를 유지하면서 시멘트 업계의 허술한 폐기물 처리를 방관,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환경부가 2026년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 해당 물량을 시멘트 업계로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직매립이 금지되면 생활폐기물을 무조건 소각한 후 매립해야 하는데, 공공소각장을 짓는 데 주민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쓰레기 처리 고충을 시멘트 소성로로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시가 상암동에 새로 짓기로 한 마포소각장 사례만 보더라도 대표적 님비 시설인 소각장을 추가 건립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초미세먼지의 주범으로 폐기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대표적 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의 배출기준은 일반 소각업계가 50ppm, 시멘트는 270ppm으로, 5배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사진=환경일보DB
초미세먼지의 주범으로 폐기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대표적 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의 배출기준은 일반 소각업계가 50ppm, 시멘트는 270ppm으로, 5배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사진=환경일보DB

반면 시멘트 공장은 석회석 수급 등의 이유로 강원도 산간 지역에 위치하며, 공장으로 인해 마을이 형성됐기 때문에 지역주민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 

환경부는 시멘트 업계의 폐기물 물량 쏠림 현상과 대기오염 배출기준 강화와 관련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폐기물 처리는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이 핵심”이라며 “순환경제의 기본 틀을 무너뜨리다 못해 주민 건강까지 위협할 정도로 특혜를 부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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