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책전략 컨설팅그룹 GR코리아 문주윤 상무

환경일보와 글로벌 정책전략컨설팅그룹 GR코리아는 다양한 정책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정책환경을 모색해 보는 ‘글로벌 정책산책’ 연재를 시작합니다. 국회,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 입안과 집행과정도 함께 고찰해 봄으로써 각종 정책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문주윤 상무 juyun.moon@gr-group.com
문주윤 상무 juyun.moon@gr-group.com

[환경일보] 전염병의 시대, 전 세계가 가장 촉각을 내세우고 있는 산업 분야는 단연 제약 및 의료 산업이다. 선진국들은 코로나19 발병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2020년 5월, 워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세우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약 11조원을 투자했다. 그해 11월, 화이자와 모더나는 각각 mRNA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영국 역시 백신 개발에 약 19조원을 투자, 아스트라제네카가 백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 정부도 ‘글로벌 백신 허브’를 세우겠다는 일념하에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2020년 4월 백신 개발에 2100억원을 약속, 2026년까지 약 2조2000억원 투입을 계획했다. 내년에는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개발 등 전반적인 지원을 위해 5625억원을 편성했다. 상당한 액수이기는 하나, 앞서 말한 선진국의 투자 규모나 포부에 비해서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글로벌 백신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 시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보건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세계 보건 단체들이다. CEPI(전염병대비혁신연합)와 GAVI(세계백신면역연합) 같은 단체들은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진행했다. CEPI는 전 세계 각국의 유망한 제약회사를 분석해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국내 기업 중에는 SK 바이오사이언스가 2000억원이 넘는 투자를 받은 바 있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역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가능성을 보이는 제약사를 선정, 투자해 왔다.

코로나19는 보건 문제가 후진국 등에 국한된 국지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보편적 의료 서비스 보급 없이는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줬다. 세계 보건 관련 단체들은 더 많은 후원을 받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전 세계의 보건 산업과 정책에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비교적 자원동원력이 부족한 우리 정부는 이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고 다양한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세계 보건 관련 단체와 협력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시그널이며, 다른 잠재적 투자자에게는 좋은 투자처라는 신뢰있는 시그널이다. 다년간 쌓아 온 국제무대에서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세계 보건 협력, 글로벌 백신 허브로 가는 방향성 제시해 줄 것

정부는 세계 보건 영역에서 인정받는 파트너들과 우리 기업들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이들과 신뢰관계를 쌓아야 하는데, 단순하면서 즉각적인 방법은 세계 보건 분야에 ODA(공적개발원조)와 같은 형태로 공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코백스 선구매공약매커니즘(COVAX AMC)’ 2억불 공여 선언은 우리나라가 세계 보건에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의적절한 처사이다. 주요 보건 단체들의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행사를 개최하면서 리더십을 형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본의 경우, 보건 ODA 공여액도 상당하지만, COVAX AMC 정상 회의, 식량안보를 위한 국제 회담 등을 개최한다. 리더십을 발휘하면 자국의 이니셔티브를 국제무대에서 설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뿐더러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면 정부가 협력과 투자를 요청할 때 수월하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F. D. 루즈벨트는 그의 보좌관들에게 끊임없이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한다. “직접 가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라.” 직접 참여해야만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확립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보건 선진 국가로서 기꺼이 책임을 이행하면서, 세계 보건 단체들과 협력체계를 형성하는 데에 앞장선다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백신 허브’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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