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나 개구리, 제비에 이르기까지 예전에 그 많았던 동물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농약이나 제초제가 이들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동물들에게도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해 점차 멸종돼 가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은 사람이나 동물의 몸속에 들어가면 여성호르몬 흉내를 내거나 남성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해 내분비 계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물질입니다. 환경호르몬은 1조 분의 1그램의 극미량으로도 수컷의 생식기관이 암컷으로 뒤바뀌거나, 둘 다 가진 간성(intersex)이 돼 아예 생식능력을 상실시키기도 하는 무서운 물질입니다.”

이기영 호서대 교수는 환경호르몬이 가볍게 생각할 물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환경호르몬의 영향에서 인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한다.

현대석유화학문명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십만 종의 화학물질을 생산해 맹독성 농약 등 엄청난 양을 자연에 쏟아 부었다. 이들 중 일부는 환경호르몬으로 몸 안에 축적돼 분해되지 않거나 체외로 잘 배출되지도 않는다. 북극곰, 심해의 고래, 정원의 토양, 플라스틱 용기, 합성세제, 화장품, 장난감, 컴퓨터뿐만 아니라 사람의 지방, 자궁의 양수, 모유 등 어디에나 존재하며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주위 곳곳에 숨어서 남성성을 약화시켜 왔다.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되는 화학물질은 약 150여 종으로 우리나라엔 이 가운데 67종을 환경호르몬 우려물질로 지정했다. 이중 절반이 넘는 40종류가 농약의 유효성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20여 종류가 사용되고 있다. 환경호르몬의 종류로는 플라스틱 성분, 농약이나 살충제 성분, 수은, 납, 카드뮴 등의 중금속, 다이옥신, 세제의 계면활성제 같은 화학물질 등이 있다. 특히 플라스틱 성분인 비스페놀 A와 가소제 프탈산에스테르 그리고 합성세제 원료인 노닐페놀이 유해하다.

요즘 연구결과 생리통과 자궁내막증이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증가에 의한 먹거리 오염이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점점 더 많이 쓰기 시작한 플라스틱, 일회용품, 샴푸, 합성세제 등이 원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 교수는 “농약으로 오염된 먹거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생활용품 들은 환경호르몬을 포함하고 있어 불임을 일으키며 궁극적으로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PCB(Poly Chlorinated Biphenyl)는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돼 온 누전을 막기 위한 절연제로 빗물에 녹아 광범위하게 전 세계의 바다를 오염시켜 물고기들 몸에 축적되고 있다. 이 사실은 이미 지구 생태계 먹이사슬 전체가 오염돼 있음을 의미하고 인간도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얼마 전 캐나다는 북부 이누이트족에게 전통적 주식이었던 북극곰과 물개를 더 이상 먹지 말라고 권고했다. 청소년들의 면역력이 떨어져 호흡계 질환과 중이염에 시달리고 정자수가 급격히 감소돼 조사해본 결과, 타 지역에 비해 모유에 환경호르몬인 PCB의 농도가 10배나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원인을 찾아보니 주된 음식인 북극곰과 물개가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정부도 가임기 여성들이나 임신부들에게 참치, 연어, 고등어 등의 생선섭취를 자제해 줄 것을 권고했다. 먹이사슬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크고 지방함량이 많은 물고기들에게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이나 수은 등의 중금속 함량이 높아 태아에게 유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가임부부 20% 이상이 불임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95년 10%에서 십년 만에 무려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불임률 증가의 원인을 사회학자들은 늦은 결혼 탓으로, 의학자들은 피임약을 장기간 사용한 탓으로 돌리지만 십 년 사이에 두 배나 증가한 원인을 설명해주기에는 부족하다.

한편 최근 국내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네 공단지역 남자 아이들이 생식기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 비율이 청정지역 남아들보다 최고 30배가량 높고, 성인 남성 정자의 질도 공단지역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대 의대팀이 2004년부터 4년간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환경호르몬에 대한 인체 역학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러한 환경호르몬의 영향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이 교수는 “유기농산물을 섭취하고, 지방질이 많은 육류나 육류 가공식품보다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해야한다. 또한 통조림, 캔, 플라스틱제품 사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합성세제보다는 천연세제를 써야 주부습진도 안 걸리고 환경호르몬에 의한 폐해를 예방할 수 있다. 어묵 등 인스턴트 식품은 뜨거운 물에 한번 데쳐 방부제나 합성항산회제를 씻어버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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