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멀찍이 땅굴은 가까이

지난 16일 UNEP가 "2002년 생태관광의 해"를 맞아 실시한 '철원 철새탐조여
행'은 뚜껑을 열고 보니 '여가와 휴식을 즐기는 생태관광'이 아니라 '반전
과 반공을 위한 안보관광'이었다.

철원평야가 그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습지 등 건강한 자연이 보존돼 있
는 좋은 생태관광지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지역적 특수성(민간인통제
선 인접)으로 인해 일반인들은 그 좋은 생태를 보기 힘든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이번 UNEP '철원 철새탐조여행'도 그랬다. 철의삼각전망대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된 통제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좌측 11시에 두루미 한가족이 있네요. 아, 이번엔 우측 2시에 재두루미
가 납니다."
참가자들은 여행을 지도한 임채수 선생님(사)한국조류보호협회)이 도로 주
변에 앉은 철새를 찾는 족족 고개를 빼들고 좌우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하
다 못해 잠시 정차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여행을 계획한 UNEP도 어찌 아쉬움이 남지 않았을까 싶지만, 왜 굳이 철원
을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가까운 경기 탄천, 충남 천수만을 비롯 대구 달성
습지, 구미 해평습지 등 우리 땅에는 많은 철새 도래지가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준농림지의 난개발로 철새 도래지에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
해 생태파괴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철새탐
조여행'은 그런 이유로 변명하기에는 너무 많이 벗어나 있다.

주 탐방지가 제2땅굴, 휴전선전망대, 월정리역, 백마고지 전적비, 파괴된
노동당사였던 걸 생각하면, 이 여행이 과연 철새를 보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아해진다. 이번 여행을 통해 체험학습을 대신하려 했던 초등학생들의 체
험일지에 어떤 내용이 실릴지 걱정이다.

이번 UNEP 철새탐조여행은 서울에서만 생활하던 어린 학생들과 청년들, 그
리고 가정에 묶여 있던 장년층 여성들에게 서울을 벗어나 가슴이 후련할 정
도로 트인 정경과 맑은 공기 복잡한 머릿속을 씻어 준 차가운 바람을 경험
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다소 성공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앞으로 주5일 근무
제 등으로 여가시간 증가가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본래 생태관광이라는 취
지에서 멀리 떠나 있는 이번 여행은 반성의 여지가 많다.

글 이지원 기자 mong0521@hkbs.co.kr
사진 오세진 기자 photoeditor@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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