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예측하는 수치예보모델은 과학기술의 총합

전문인력 개발 및 환경조성 위한 투자 지속돼야

 

이우진 수치예보관.

▲ 기상청 이우진

  수치모델관리관

 

국내 최장의 인천대교를 운전하며 지나가거나 얼마 전 화제가 된 버즈 두바이 호텔에 하루 묶게 된다면 첨단 기술과 서비스를 확인하는 데 단 몇 초면 충분할 것이다. 반면 슈퍼컴퓨터센터를 방문해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난 후에도 반도체로 집약된 컨테이너 상자에 불과한 외관을 통해서 어떠한 심오한 과학기술의 의미나 경제적 가치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이 소프트웨어, 보다 엄밀하게 응용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체감지수일 것이다.

 

막강한 응용 소프트웨어와 OS를 앞세운 애플과 구글의 선제공세에 하드웨어 중심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고전하는 스마트폰 사례에서 보듯 소프트웨어는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 긴 시간이 필요한 공정보다는 바로 성과가 나타나는 것, 사람보다는 제품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기상청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기예보를 결정하는 제반 기술 중에서 관측자료가 32%, 예보전문가가 28% 그리고 기상예측 소프트웨어가 40%의 비중을 각각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도 기상연구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슈퍼컴의 비중이 각각 20%로 분석됐다. 수치예보모델(numerical weather prediction model)이란 기상예측을 위해 사용되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최초의 수치예보모델은 1922년 루이스 프라이 리차드슨 박사가 개발했다. 1946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이 미국에서 개발됐고, 수치예보모델이 최초 컴퓨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사용됐다. 그 후 수치예보모델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10년마다 예측 가능한 기간을 하루씩 늘려가면서, 오늘날 주간예보의 신뢰도를 높이고 나아가 과학적 계절기후예측과 기후변화 전망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지금부터 100년 전에 이미 수치예보 기술의 이론적 토대를 닦았고, 60년 전부터는 컴퓨터를 이용한 응용기술을 개발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 왔다.

 

날씨와 기후를 예측하는 데 쓰이는 수치예보모델은 수 만가지 개별 프로그램들로 짜여 있다. 개별 프로그램들은 각각 전문적인 과학과 기술을 대표한다. 수치모델의 성능은 개별 프로그램의 수준과 품질의 총합이다. 기상청은 지난 20년간 주로 미국과 일본의 모델을 도입해 운영해 오면서 우리 기술력을 쌓아왔다. 기상청은 최근 슈퍼컴 3호기를 도입하면서 세계 2위의 예보정확도를 자랑하는 영국기상청의 모델을 함께 들여왔다. 모델이 좋아야 그 자료를 가공해 생산한 일기예보의 품질이 덩달아 높아진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재 기상청이 운영하는 모델의 성능은 세계 9위 수준이다. 기상청은 오는 2012년까지 6위, 2020년까지 3위 이상을 목표로 뛰고 있다. 지난 20년간 무에서 9위까지 올라온데 이어, 앞으로 10년 내에 다시 여섯 계단을 상승해야 한다. 기상분야 선진국들이 60년에 걸쳐 이루어낸 결과를 30년 안에 얻으려면 그들보다 2배 이상의 속도로 압축성장해야만 하고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의 핵심은 사람이다. 기초지식과 창의성과 팀워크를 겸비한 전문 인력이 모여야 하고, 개별 역량을 집중하고 분발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며 이에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담보돼야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가 선두로 나서는 길은 험난하다. 글로벌 경제가 가속화되면서 선두그룹과 뒤처진 그룹간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 정확도는 최근 많이 향상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모델 성능은 아직도 선진국과 큰 격차가 있다. 일기예보가 적중했을 때 사회가 받는 이득이 기술개발의 투자로 이어져야 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이 가능하다. 선진국에서는 기상분야의 산업과 민간 서비스 시장이 두터워 민간부문의 재투자가 가능하나 이 분야의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민간 시장이 태동하는 단계라서 정부의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는 당장 돈벌이가 되지만 또 다른 부를 창출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의 지식과 창의성을 개발하는 데에는 손이 미치지 않는 분야도 있다. 어떤 분야는 금전으로 유통되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보전해주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며 국가의 안보와 경제발전을 견인하기도 한다. 각 분야가 고루 필요하겠지만 후세에 더 나은 국가의 장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갖춰야 한다.

 

그 지역의 기상현상을 가장 잘 예측하는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수십 년간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고, 세계최고 성능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치열하게 기술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상 선진국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큰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수십 년의 투자 후에 이득이 환수되는 원천기술개발을 위한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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