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발로 훼손된 습지복원 책임 없어

미국, 사업자가 직접 보상․완화조치 이행

 

윤익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윤익준 연구원
습지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산란장의 역할을 하며, 수질정화 및 홍수조절과 같은 공익적 기능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 다양한 사회․경제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연자원으로서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서해안 갯벌을 비롯해 하천의 배후습지를 포함한 다양한 습지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1997년에 7월, ‘물새의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의 보전에 관한 람사협약(Convention on Wetlands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 The Ramsar Convention on Wetlands)’에 가입하고, 1999년 2월에는 습지보전법을 제정하면서 습지의 보전에 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하수정비사업, 택지개발사업, 공장부지 조성 등 개발우선정책에 떠밀려 상당한 면적의 습지가 훼손되거나 파괴됐다. 더욱이 습지보전법 제정 이후에도 ‘시화호 매립’ 및 ‘새만금 간척사업’ 등 대규모 간척사업은 갯벌과 같은 중요한 습지의 훼손을 불러왔다.

 

반면 우리나라보다 산업화를 먼저 이룩한 선진국들은 이미 심각한 습지의 상실 또는 훼손을 경험했고, 일부 국가에서는 더 이상의 습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1977년 ‘습지보호를 위한 대통령령’을 통해 습지의 매립과 준설을 규제했으며, 1988년부터는 습지의 순손실 방지 정책(No Net Loss Wetlands Policy) 또는 습지총량제에 따라 습지의 보전 및 나아가 훼손된 습지의 복원을 위한 완화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서 습지총량제란 상실되는 습지의 가치 이상의 습지를 동일지역 또는 타 지역에 대체 조성하도록 해 습지의 총량과 총 기능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미국은 습지를 훼손하거나 훼손할 우려가 있는 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자에게 습지의 훼손을 회피, 최소화, 수정, 감소 또는 제거하거나 보상하는 단계적인 완화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여겨 볼 것은 공공의 이익을 수반한 개발사업에 한해 습지의 상실이 불가피한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개발사업의 허가를 받은 자에게는 상실되는 습지의 가치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보상·완화의 책임이 부과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익을 위한 불가피한 개발사업으로 인해 습지가 훼손된다 할지라도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서만 개발사업자에게 사업허가 시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거나 자연환경보전법상 생태계보전협력금을 납부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훼손된 습지의 복원이나 조성 등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환경영향평가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생태계보전협력금이 실질적으로 훼손되는 습지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반면 미국의 보상·완화조치는 개발사업자가 직접 보상․완화조치를 이행(책임완화제도)하거나 제3자가 보상․완화조치를 대행하도록 규정하며, 이에 따라 습지의 보존, 복원, 기능향상, 조성하는 조치를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상완화조치의 유형 가운데 습지은행제도는 개발사업 시행 이전에 습지를 복원․조성․개선․보존해 그 가치만큼 규제기관으로부터 습지대변권을 발행 받고, 이를 비축했다가 추후에 습지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인해 손실되는 습지의 가치만큼 개발사업자가 습지대변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즉, 불가피하게 습지의 손실을 가져오는 개발자가 동일지역에 대한 보상․완화조치의 수행이 불가능하거나 또는 습지은행의 이용이 환경적으로 더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개발사업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습지은행으로부터 습지대변권을 구매하도록 함으로써 개발사업으로 인한 습지의 총량의 감소를 방지하고자 하는 제도다.

 

습지은행제도는 습지의 상실 이전에 원래 습지였으나 현재에는 습지의 기능과 형태가 훼손된 원습지를 복원하거나 훼손되는 습지를 보존, 개선 또는 신규로 습지를 조성함으로써 개발사업에 따른 습지 환경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개발사업자가 개발사업과 보상․완화조치 의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부담을 경감시켜준다. 더불어 전문기관에 의해서 대규모의 습지 조성과 같은 완화조치의 이행을 통해 환경적으로 더욱 긍정적인 습지의 보전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기후변화와 관련해 논의되고 있는 탄소배출권거래제도와 같이 개발과 보전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환경영역에서 환경거래의 개념은 큰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관점에서 습지은행제도는 습지의 보전에 있어 공익을 위한 불가피한 개발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면서도 그러한 개발로 인해 손실되는 습지의 가치와 면적의 ‘순손실’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논의의 필요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물론 ‘자연환경 복원’에 대한 기술적, 제도적 틀이 마련되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이와 같은 제도를 충분한 검토 없이 국내 법제도상에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간척 및 매립사업 등 개발 압력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돼가는 갯벌을 비롯한 국내 습지의 보전을 위해서는 습지보호지역과 같이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할 가치가 있는 지역은 자연 그대로 보전해야 하지만, 공익적 목적을 지닌 상대적으로 보전가치가 낮은 습지의 개발은 허용하되 개발로 인해 훼손되는 습지의 기능과 가치의 순손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습지은행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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