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불안정성 등 한계로 입체적 감시 역부족

기후에 대한 교육 통해 진정한 과학 이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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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청 이우진 수치모델관리관
“A 선수의 희생플라이로 3루 주자가 홈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다급한 육성을 라디오로 듣는 순간, 공격 팀이 곧 1점을 더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그러나 9회 말이 끝나기 전까지는 어느 팀이 몇 점차로 승리할 지 미리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주위에서 실황중계가 예보보다 쉽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고, 이것은 거의 상식으로 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반대의 논지를 편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갑작스럽게 예고에 없었던 폭우가 쏟아지거나 함박눈이 내리면 으레 신문지상에는 실황중계도 제대로 못한다는 비아냥거림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하루 이틀은 고사하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통용되는 상식의 관점에서 예보판단의 실패를 구박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좀 더 과학적인 측면에서 비평이 가해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슈퍼컴이 그려내는 가상공간의 수치모의(數値模擬)에는 반드시 일반적인 통설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가상공간의 대기현상에는 여러 시공간 규모의 운동들이 섞여 있고, 각기 예측특성도 다르다. 단순한 현상이 복잡한 현상보다 예측 성공률이 높다. 천천히 진행하는 기온의 변화가 급격히 발달하거나 소멸하는 구름의 변덕보다 이해하기 쉽다. 대륙만한 큰 순환은 도시만한 작은 운동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다. 고층의 제트기류는 지면 부근의 난기류보다 그 변화를 따져보기 쉽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오감으로 체감하는 뇌전, 우박, 집중호우띠, 소낙눈, 폭풍 같은 기상현상들은 하나같이 슈퍼컴이 분석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대상들이다. 그래서 5일 후의 제트기류의 변화보다 한 시간 앞의 우박현상이 더 예측하기 어려운 역설이 가능하다.

 

왜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가? 근본적으로 대기운동이 갖는 카오스(chaos)적 요소 때문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대서양을 퍼덕이는 나비의 작은 몸짓이 며칠 후 우리나라에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초기조건에 대한 극단적인 민감도는 곧 대기운동이 갖는 근원적 불안정성을 대변한다.

 

첨단 기상위성과 레이더 탐측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관측망은 전 지구 대기를 입체적으로 감시하는 데 역부족이다. 어느 누구도 어느 한 순간 수도권의 각 호구마다 기온의 분포를 일일이 알지 못한다. 지난여름 수도권을 내습한 태풍 ‘곤파스’의 3차원 바람장의 구조를 제대로 포착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관측기술의 진보를 기다려야만 한다.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처럼 조각조각 나타난 자연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 뿐 전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슈퍼컴에 입전된 초기 분석오차는 계산과정을 통해 시 공간으로 전파돼 결국 예측자료로 전이된다. 따라서 실황분석 또는 중계의 한계는 곧 예보의 한계에 대한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이며, 전자가 후자보다 예측하기 쉬운 것도 아니다.

 

과학의 원리와 일상의 상식이 충돌할 때, 흔히 상식이 승리하고 과학은 상아탑의 진부함으로 무시되기 쉽다. 일기예보가 빗나갈 때 공식기관이 내놓는 해명이 오해를 낳는 이유도 일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기예보의 불확실성과 실황감시의 어려운 점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날씨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어린 시절부터 공공교육에 이를 반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일기예보 과학의 발전의 속도만큼 그 한계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함께 커가야 진정한 과학의 효용을 향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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