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및 외국인 노동자 무료진료, 정부의 예산 지원은 턱없이 부족

 

정백근 사진.
▲ 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정백근 교수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공급은 주로 민간부문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 전체 병상의 89%는 민간부문의 병상이며 단지 11%만 공공병원에서 운영하는 병상이다. 적어도 공공의료의 취약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병원의 소유주체가 민간이라는 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나라에서는 소유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공공부문이 아니지만 지역사회에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민간의료기관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의료법에 의해 병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법인 병원들은 비영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조차도 사실상은 개인이 지배하며 이윤추구적 경향이 강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의사들은 지식인의 성격을 갖고 있기 보다는 자본가적 성격이 농후하며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는 상업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공병원들은 다양한 사회적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34개 지방의료원과 5개 적십자 병원을 일컫는 것으로서,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적정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공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평균진료비는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에 비해서 75-80% 정도로, 지역 주민들에게 적정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의료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성질환관리, 무료검진 등 포괄적이고 공익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부정적 평가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평가의 상당 부분은 많은 지방의료원들이 경영수지 측면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자의 상당 부분은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역할과 다양한 공익적 서비스 제공이 기여한 바가 크다. 2008년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적십자병원들의 당기손익은 약 36억원이 적자였으나 적십자병원들이 진료했던 의료급여환자 비율과 본인부담금 비율을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의 그것과 동일하게 한 상태에서 계산하면 그 적자는 약 6억원으로 감소됐다. 게다가 적십자병원들이 사회적 취약계층들과 외국인 노동자 등에게 무료진료를 제공함으로써 지출한 비용을 제외시키면 오히려 약 4억원의 흑자로 전환됐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므로 현재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이 발생시킨 적자의 상당부분은 이들 기관들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적자’라는 맥락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관점으로 평가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자원 인프라는 매우 취약하며, 이는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에 대한 나쁜 ‘입소문’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경향들 때문에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은 다른 한 편으로는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일부에서는 공공병원이 민간병원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더욱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일차적인 조치는 정부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에 대한 획기적인 자원 투입이다. 그러나 취약한 우리나라의 공공보건의료체계 속에서 개별 지역거점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전달체계 자체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립대병원이라는 공공병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국립대병원들은 그 권역 안에서는 가장 신뢰받는 병원인 경우가 많고 광역의 거점 병원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에 대한 발전방안을 제대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립대병원으로 대표되는 광역거점 공공병원 및 지역 보건기관들과의 총체적인 연계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자원 인프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국립대병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국립대병원들이 위치하고 있는 권역 내부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에 대해 국립대병원들의 우수한 인력들이 교육훈련, 기술지원, 인력지원을 상시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과 자원 투입이 가능해진다면, 해당 권역의 공공보건의료체계 자체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성과물들은 자연스럽게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수행된 조사결과를 보면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국립대병원의 교육훈련, 기술지원, 인력지원에 대한 요구도는 매우 크며 많은 국립대병원들도 정부의 예산지원이 있다면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을 중요한 보건의료정책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권역 심뇌혈관질환관리센터, 권역별 전문질환센터, 어린이병원, 노인의료센터와 같은 대형 정책의료센터들이 국립대병원 및 일부 사립대병원에 설치돼 있다. 이들 센터들은 보건복지부와 광역지방정부의 보건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질병관리 정책수단이기 때문에 만약 개별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특성에 맞게 각 정책의료센터와의 실질적인 연계고리를 확보한다면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도 국립대병원과 지역거점 공공병원 간 연계방안을 고려하고 있고, 일부이긴 하지만 예산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정책과 질병관리 정책 간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직 정비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을 때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의 사회적 위상은 제고될 것이고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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