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기준 부족하지만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

안전기준 및 방법 제시 위한 실행기구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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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홍형석 상임연구원

먹을거리 안전사고는 신문지상에서 연일 빠지지 않는 주요 사안이다. 여름철이면 기승을 부리는 집단 식중독 발병을 비롯한 쥐머리새우깡, 면도칼 참치캔과 같은 식품 내 이물질 발견, MSG와 같은 식품첨가물 문제, 최근 유럽의 슈퍼박테리아 사태와 일본산 농수축산물 방사능 오염 문제, 미군부대의 고엽제 매립으로 인한 인근지역 농산물 오염문제까지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촛불시위까지 먹을거리 안전문제는 구매한 소비자들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인 사안으로까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 둘러싸인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는 새로운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 식품을 구매하기에 앞서서 포장지에 표시된 제조일자, 유통기한, 원산지, 영양성분, 원재료 성분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으며, 친환경농산물의 소비량도 크게 늘어나 2003년 전체 농산물 대비 2.1%에 불과하던 친환경농산물의 생산량도 2010년 12.2%로 크게 늘어났다. 또한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관심 속에서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 푸드마일리지운동은 유행처럼 번져서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의 증가, 지역 먹을거리운동의 확산 등 대안적인 먹을거리 소비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주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돼 있느냐를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어 소비자들은 자신이 소비하는 먹을거리가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누가 생산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소위 믿을 수 있는 대기업 식품을 먼저 찾게 되고, 대형마트를 더욱 선호하게 되고,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보다 인증제도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농민이, 이를 가공한 지역소가공업자가, 판매하는 소상인들이 수입농산물과 대기업들에 의해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글로벌생산과 글로벌소비, 경쟁과 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산업적인 농식품 체계가 지금의 먹을거리 안전의 위기를 가져온 주범임에도 지금의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기준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비싼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할 능력이 없어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먹을거리 차별을 일으키는 새로운 양극화 현상까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먹을거리가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먹을거리 체계가 안전해져야 한다. 먹을거리 체계가 안전해져야 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규제와 인증제도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인체에 해로운 요소가 먹을거리 내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관리와 규제가 우선돼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부정적 효과가 예상되거나 인체에 유해할 위험이 있을 시에는 이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전예방의 원칙이 그래서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한 먹을거리가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농약과 비료와 같은 석유화학물질에 의존하는 농업이 아닌 생태적이고 유기적인 농업이 확대돼야 하는 한편, 안전한 농산물의 생산비가 보장되고 농민들의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 아무리 안전한 먹을거리를 강조한들 이를 생산할 농민들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더불어 먹을거리에 대한 경제적 차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안전한 먹을거리를 소비할 권리가 있다. 공공급식, 푸드뱅크, 푸드마켓, 저소득층 영양지원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여기에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가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업문화는 그 지역의 식문화에 영향을 주어왔고 우리의 몸에 영향을 주어왔다. 서구식 식단이 당뇨병, 암과 같은 서구사회 질병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제철 채소 위주의 고유 식단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식품 내의 영양분뿐만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도 안전한 먹을거리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안전한 먹을거리는 ‘과학적으로 인체에 해롭지 않은’ 먹을거리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적절한’, 그리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먹을거리일 때 우리의 몸과 사회에 안전한 먹을거리가 될 수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과학적 기준은 아직 부족하지만 제도적으로 형성돼 있고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기준은 각기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확립된 기준으로는 제시되고 있지는 못하다.

 

사회적으로 진정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우리 모두가 함께 그 기준을 제시하고 방법을 고안하고 함께 실현해야 한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실행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른바 먹거리보장위원회(가칭)를 통해서 정부와 생산자와 소비자, 관련 기업들과 시민사회진영이 함께 안전한 먹을거리 체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과 규제를 넘어서 먹을거리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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