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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소명의식 갖고 정책변화 이끌어야
[환경일보 김경태 기자] 제17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 결과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미국, 일본, 러시아 등이 교토체제 연장에 불참했기 때문에 국제기후변화체제가 느슨해졌다며 비판을 하고 있으며 다른 일각에서는 2020년 이후 개도국의 참여를 약속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더반회의에 참석한 KEI 이정석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일부 언론의 ‘기후변화체제 회의론’에 대해 이정석 박사는 단호하게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성공이 아니다, 성과가 없었다는 식의 반응은 곤란하다”며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교토의정서 연장, 2020년 온실가스 감축 의무 등 기본적인 방향에서 국제적인 합의가 이뤄졌다는 면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박사는 “2012년 1차 공약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선진국 입장에서도 국제사회 정치적인 부담을 떨치기 어려운 순간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개도국과 아프리카나 최빈국이 지금까지 중국입장에서 선진국을 압박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EU의 손을 들어주면서 중국, 인도 등의 선발 개도국들도 더는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이 박사는 “결국 벼랑 끝까지 와서 극적인 타협을 이룬 모습처럼 보이지만 과거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끝에 합의에 다다른 것”이라며 “오랜 시간에 걸친 협상과정이 시간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런 노력을 간과한 체 단순한 결과만 보고 실패라고 단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지혜를 믿는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9년 코펜하겐총회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모여 밤새 회의를 계속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멘텀을 잃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 박사는 “물론 코펜하겐에서는 정치적인 수준의 합의에 그쳤지만 그것들이 상당수준 구체화 된 것이 다음 해 열린 칸쿤 합의문이었다”며 “국가별로 입장 차이가 있지만, 190여개 나라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논의를 계속하고 조금씩 성과를 거두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박사는 기후변화협상의 구조적인 한계를 두 가지 꼽았다. 협상이 계속해서 횡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과 너무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논의가 잘되려면 의제가 종적으로 펼쳐져서 아래, 혹은 윗단계부터 단추를 꿰어나가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이번 FTA처럼 양자 간에 이해관계가 분명해야 빠른 시간에 협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기후변화협상은 정치, 사회, 환경, 경제 등 수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으며 190개국이 넘는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한 조건인 ‘2℃ 이내 기온 상승’을 이루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과 실제로 이뤄지는 감축이 차이(Ambition gap)가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그러나 이 박사는 “이 차이를 메우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인류가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 결단을 내리다
아직도 더 많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한 중국이 2020년부터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중국이 한발 물러선 것은 ‘더는 개도국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국제적인 압력을 수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이상,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미국 역시 중국을 핑계로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변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중국을 따르던 최빈국들도 견해를 바꿔 EU를 지지하면서 중국의 입장이 곤란해진 점도 있다. 앞으로 중국이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현상이 계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 러시아 등이 2차공약기간에 회의적 태도를 취했지만 2020년 이후까지 독불장군 같은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다행히 2차공약기간에 우리나라는 의무감축국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7번째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인 만큼 2020년 감축참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 박사는 “우리 정부가 그동안 선진·개도국 간 가교역할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실제로 이번 협상을 통해 보자면 EU가 그 역할을 했다”며 “우리가 진정한 가교역할을 하려면 먼저 내부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응은 옳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은 이미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를 도입했고 배출권거래제가 국회 상정 중이다. 이 박사는 “이번 정부 들어 녹색성장이 겉포장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방향만큼은 선도적으로 대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이 크다”고 말했다.
일본이 교토체제를 주도했음에도 2차공약기간 불참을 선언한 반면, 한국은 오히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1997년 교토의정서가 만들어질 때만 해도 ‘일본이 국제사회에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었다”며 “그러나 지나치게 중앙정부 위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방에 무리를 주는 효과가 나타난 것 아닌가 싶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방자치가 아직 미숙한 수준인 반면 일본은 지방분권화가 잘 된 나라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정책을 중앙정부가 추진해도 지방에서 수용하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 박사는 현정권에 대한 조언일 수 있다며 “지금까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좋은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했더라도 실제 온실가스 감축은 차기와 차차기 정권에서 국민과 지자체가 수행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지자체를 보면 아직 독자적인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앙정부의 변화를 따라가기 급급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첫단추는 잘 끼웠지만 이것이 정상적인 가도를 타고 원활하게 추진되려면 다음 정권, 그다음 정권이 해야 할 몫이 크다. 지금은 그 기반을 마련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온실가스 감축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지자체와 시민, 기업들의 역량을 키우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원자력이나 갯벌 파괴 논란에 휩싸인 대규모 조력발전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물론 방향은 맞지만, 현정권 하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며 “중앙정부는 큰 줄기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전략은 중앙정부가 짜더라도 실제 전술을 수립해서 전투에 임하는 것은 지자체가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장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겠지만 녹색성장이 기후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일본 기업들이 ‘마른 수건 짜기’라는 표현을 쓰면서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반대하는 것은 지자체와 국민들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협상단 무용론’에 대해서도 그는 강하게 반박했다. 기후변화라는 의제 자체가 수백 가지 사안과 연결된 만큼 100여명의 인원으로도 모두 감당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협상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회의에 참여해서 고민해야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아닌가”라며 “현실적으로 공무원들이 순환보직 원칙 때문에 계속 바뀌는 현실에서, 전문가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이를 활용해 협상에서 안전핀 역할을 하고 오히려 공무원들을 자극하고 이끌어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mindaddy@hk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