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한 여름은 조롱박과 수세미가 한창 익어가는 7월의 풍경으로 기억되곤 했다. 그런데 몇 해 전 부터는 6월 중순에 다 자란 수세미를 보는 일이 허다해졌다. 최근 들어서는 5,6월에도 마치 한 여름처럼 뙤약볕이 기승을 하고 무더위에 밤잠을 못 이루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나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풍경은 어느새 일상이 되고 있다.

 

이규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상기온이니 기후변화니 하는 말은 국제기구의 회의 주화의 주제나 일부 과학자들만이 사용하는 학술적 용어였다. 그러나 이제는 삼척동자들도 아는 말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7월 100년 만의 집중호우와 올 6월 104년 만의 가뭄과 같은 보도는 이제 새로운 소식도 아닌 셈이다.

 

예로부터 농사의 절반은 하늘이 짓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의 땀으로 짓는다고 했다. 최근의 이상기온은 절반을 하늘에 의지하는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을 가하고 있다. 갈수록 농사짓는 일이 힘들어지는 실정은 국제쌀연구소(IRRI)의 보고를 통해 실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보고에 의하면 지구의 기온이 1℃ 상승하면 쌀 수확량은 10% 감소한다고 한다.

 

최근 들어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쌀의 생산량이 점차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농산물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농산물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진다. 농산물 가격은 개개인의 장바구니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더 나아가 국가 경제를 위협하고 이는 다시 세계경제를 위협하게 된다.

 

실제로 2007년에서 2008년에 걸쳐 카메룬과 세네갈, 이집트, 모로코 등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남미의 볼리비아와 아시아의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수많은 나라에서 식량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식량가격의 폭등으로 가난한 민중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2008년 멕시코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는 ‘토르티야 폭동’이가 불렸는데, 멕시코 사람들의 주식인 토르티야의 원료인 옥수수의 가격이 몇 년 사이 80%이상 증가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제대로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심각해졌던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농산물의 수급불균형은 국내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는 해마다 식량가격지수(Food Price Index : 유엔식량농업기구가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식품 가격을 지수화한 것)를 발표하고 있는데, 곡물과 유제품 등 50여 개의 주요 농산물의 국제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앞으로 식량으로 인한 문제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인 가뭄과 홍수 등의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이 훼손되고, 경작지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세계적인 농산물 생산의 수급불균형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가계 경제와 국가경제 더 나아가 국제 경제의 불안정성의 심화를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가장 비탄력적인 소비재인 농산물을 주요 곡물수출국에서 무기화한다면 국가경제는 파탄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농업연구자들은 꾸준히 농산물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유사시 국가식량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상기온과 기후변화에 대한 예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이 땅의 먹을거리를 지키고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일각에서 기후변화적응과 관련한 많은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많다. 대부분의 정책들은 온실가스 저감기술 개발, 탄소세도입, 배출권거래제 등이다. 수많은 정책들 속에서 농업정책에 관한 연구와 논의는 주요 정책에서 밀려나는 듯하다. 정책 입안자들은 농업을 경제활동의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농업은 단순한 경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식량 안보의 확보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우리 모두 알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기후변화에 따라 주요 식량수출국의 상황이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농업기술의 개발 및 보급 등을 통한 자주농업주권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생명연구는 단기간에 걸쳐 좋은 결과를 내는 법이 없다. 장기간 수많은 연구자들의 땀에 의해 하나하나 이루어져 마침내 결실을 얻을 수 있듯, 농업생명분야의 연구 개발도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국가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일에 머리는 맞대어야 이 땅의 미래를 안전하고 견고하게 다져나갈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의 내일을 지켜주는 첫 단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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