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환경일보】 강위채 기자 = 을사조약(1905년) 이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2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제와 맞서 싸웠던 경남 하동군 옥종면 출신 이만영(李萬永)·양문칠(梁文七) 의병장 등 경남출신 항일투사 12인의 항일기록이 향토사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정재상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은 제3회 의병의 날(6월1일)을 앞두고 지난 27일 경남출신 항일투사 12인의 항일기록을 공개하고 국가보훈처에 이들 12인의 서훈을 청원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번에 밝혀진 이만영·양문칠 의병장 등 12인에 관한 기록은 한국주택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로 <진중일지(陣中日誌)> 14책 중에 있다. 이 자료는 일본군 보병 12여단 산하 14연대가 작성한 항일의병 진압작전 기록이다.


이 기록은 1907년 7월23일부터 1909년 6월19일까지 한국의병이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증언하는 자료로 총 2400여 쪽 분량으로, 자료에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항일 의병의 투쟁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재상 위원장은 “이 기록에는 경남창의대장 박동의(朴東義 산청 출신) 의군의 조직편제와 하동 출신 임봉구(악양)를 비롯해 류명국(옥종) 의병장의 활약상이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박동의 의군의 조직편제에는 좌선봉에 이만영, 중군장에 양문칠, 후군장에 류명국, 도선봉에 이학노(경북 영천) 등으로 구성됐다”며 “박동의, 이만영, 양문칠, 류명국, 이학노가 함께 활동한 사실도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이만영의 기록은 <하동군지>에도 없다”며 “좌선봉장으로서 경남창의대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양문칠의 활약상은 <하동군지>에 한줄 정도 소개돼 있을 뿐 그에 대한 상세한 항일기록이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만영과 양문칠은 박동의, 이학노, 류명국 의병장과 함께 1907년부터 지리산 부근에 배치된 일본군 수비대 10여개소를 공격했다.


특히 이들은 1908년 3월26일 박동의 창의대장과 함께 의병 50여명을 이끌고 산청경찰서와 군청을 습격해 불태웠다.


또 4월16일에는 류명국 등과 함께 전북 남원에 있는 입석수비대를 공격해 일본군에 큰 타격을 가했으며, 8월26일에는 의병 30여명으로 무장하고 하동수비대를 기습공격하기도 했다.


이번에 서훈을 청원한 정 위원장은 “이만영과 양문칠 의병장의 이번 기록발굴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자료 발굴 소식을 접한 양문칠 의병장의 아들 양재수(76·악양면 정서리) 씨는 “내가 태어난 후 7개월 만인 1937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아버지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친의 항일기록을 찾게 돼 고맙고, 그동안의 맺힌 한이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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