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입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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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덩굴류
필자가 가리왕산을 처음 만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이미 가리왕산에는 멸종위기종인 산마늘, 위기종인 노랑무늬붓꽃, 백작약, 등칡 등이 사라지고 없고, 주목과 사스레, 층층나무, 전나무 등의 대경목만 볼 수 있는 시기였다.

 

2011년 11월 평창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입지 선정을 하면서 가리왕산의 대안지로 만항재를 개략조사 할 때 잠깐 가리왕산을 보았다. 당시 가리왕산은 엄마 가슴과 같은 산으로 나에게 인식됐다.

 

가리왕산은 필자의 지인들이 봄만 되면 연구를 위해 찾았고 산림 유전자원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기에 ‘왜 하필 활강경기장을 가리왕산에 건설해야 하는지’ 너무나 안타까웠고 대안지를 찾는데 적극 참여했다.

 

2011년 7월7일 남아공 더반에서 강원도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는 낭보를 듣고 필자도 환호성을 지르며 반가워했다. 활강경기장의 입지 조건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의 조건을 갖춘 표고 800m, 17도 경사를 갖춘 북향의 산지가 필요했고 경기 운영에 제약이 없는 교통시설이 요구됐다. 최적지가 가리왕산이었고, 2003년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때 가리왕산에 시설 지원을 약속한 바 있었기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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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의 사스레나무 군락
그러나 외국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의 유치 사례와 환경 훼손, 가리왕산이 유전자원보호림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갈등하고 대안지를 찾는 과정에서 혼란이 야기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동계 스포츠의 메카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산악지역인 강원도에서 활강경기장 입지를 만족시키는 대상지가 없다는 현실에 좌절했다.

 

인근 일본만 해도 조건에 충족하는 산이 많고, 현재 운영 중인 활강경기장 중에서도 올림픽 개최 조건에 적합한 곳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가리왕산에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올림픽대회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산림 유전자원을 보전·관리하는 산림보호법에 관한 특례가 만들어 지면서 급속하게 다른 대안지 없이 가리왕산을 활강경기장으로 내어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

 

유전자원보호구역 가리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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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표고버섯
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가리왕산 훼손의 선행 조건으로 보호구역의 보전·복원계획이 수립돼 가리왕산의 다양한 산림자원들을 어떻게 보전할 것이며 부득이 훼손된다면 어떻게 복원해 후세대에 물려 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게 일이었다.

 

이 작업은 너무나 중요하고 복잡하며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나올 수 있는 계획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시행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이 계획 수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이슈인 가리왕산 훼손에 따른 보전·복원 계획을 자진해서 맡아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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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의 주목

필자는 우리나라에 가리왕산 말고는 활강경기장 대안지가 없어 올림픽을 못한다고 물릴 수도 없고, 이제 와서 대상지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계획 수립에 책임을 맡기로 했다.

 

2012년 가을. 새로운 가리왕산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방법이 강구됐고, 전국 산림기술사들이 모여 가리왕산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산이며 너무나 귀중한 산림자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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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의 복원계획팀
유전자원보호구역 하단 해발 1000m 지점은 키가 크고 하얀 빛을 내는 사스레 대경목 군락, 층층나무 대경목 군락, 마가목, 시닥나무, 피나무, 들메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종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해발 1200m 지점은 분비나무 대경목과 잣나무, 소나무 대경목들이 후계목을 키워가고 있었으며 위쪽으로는 붉은 수피를 자랑하는 주목 군락이 산복을 따라 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주목 대경목들은 하나같이 덩굴류에 감겨 초라하게 서 있었으며, 신갈나무 대경목들은 동공현상으로 태풍 피해를 입어 많은 나무들이 철쭉 군락지로 쓰러져 있었다.

 

산정엔 인가목 군락과 다양한 초본류 군락지를 조사해 표시했다. 모든 초본류와 관목, 아관목, 교목을 전수 조사해 좌표를 기록하고 식생지도를 완성했다.

 

그런데 강원도 올림픽 조직위에서 제시한 활강경기장 조성 계획도를 검토해 현장과 대조한 결과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것들을 다 보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고, 그렇다고 경기장 건설에 다 내어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몇 번에 걸친 IOC 노선 선정기술자의 방문과 산림청, 동계올림픽조직위, 강원도, 환경단체가 필자의 연구진과 협의 끝에 당초 노선을 전명 수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발문>

 

당초 노선 전면 수정 성과 거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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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의 후계목(전나무)

가리왕산을 지키기 위한 핵심은 노선을 이전, 폐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획의 첫 단계라 생각하고 원칙을 세워 진행했다.

 

가장 먼저 희귀수종과 가리왕산의 특성종을 훼손하지 않는 방안으로 계획된 노선을 이전해 줄 것을 강원도와 산림청에 요청했다.

 

가리왕산의 상징인 중봉과 주목 군락지를 보호하고, 사스레 대경목 군락지, 분비나무 모수, 병품쌈 군락지, 금강제비꽃 군락지 등이 생육하는 지역에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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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의 초본류(백작약)

선 배치를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하며 노선 변경에 따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 몇 번에 걸친 IOC 노선 선정기술자의 방문과 산림청, 동계올림픽조직위, 강원도, 환경단체가 필자의 연구진과 협의 끝에 당초 노선을 전면 수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지면을 통해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그 노력이 훼손될 가리왕산에게 최소한의 위안을 줬다고 자부하고, 훗날 후손들에게 ‘우리 세대가 최선을 다했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한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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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의 초본류(병풍쌈)

고 생각한다.

 

노선 이전과 통폐합이 결정되자 보전·복원 계획의 목표와 원칙들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복구 구상들이 나왔다.

 

첫째로 노선의 이전계획은 주요 식생 분포지역을 회피하는 8개 지역에서 이뤄졌으며 성공적이었다. 둘째는 교목의 이식 계획이 수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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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분비나무 모수
전나무, 주목, 잣나무, 분비나무 등 생육 상태가 우수하고 근원 직경이 14cm미만일 경우 굴취 인근지역에 교목이식 생육환경 개선작업을 통해 당초 숲의 구조와 거의 동일하게 만들어 스키장 노선의 좌우에 배치토록 했다.

 

또한 차후 스키장 개설 후 훼손지에 자연적인 갱신이 가능하도록 토양 상태, 경사도, 임분 상태 등을 정밀 조사토록 반영했다.

 

셋째로 철쭉, 함박꽃나무, 참개암나무, 고광나무 등 아교목과 관목의 이식계획으로 경기장 주요 공지 및 슬로프 좌우 숲 구조가 비슷한 지역에 인접지 및 사업지 내 이식을 원칙으로 근주 및 포기이식 방법을 채택했고 이식조건은 비슷한 표고, 향, 임내습도 등을 고려했다.

 

초본류는 이식대상 종으로 현장조사와 환경부 및 산림청, 국제자연보호연맹 등에서 제시한 보전가치 등급기준에 따라 산마늘, 금강제비꽃, 병풍쌈, 금강애기나리 등을 이식 대상종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생육지 인근으로 생육 조건을 감안한 표토이식을 계획했는데 일본 나가노 올림픽 활강경기장 사례 조사에서 가장 향후 효과가 검증된 표토의 채취, 저장, 이식방법을 계획해 반영했다.

 

넷째로 Seed Bank(사업지외 이식) 계획으로 가리왕산에 기존의 산사태 등으로 훼손돼 있는 지역과 인공 조림지를 대상지로 조사하고,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조성으로 훼손되는 주요종의 종자를 보전하는 것이다. 금강애기나리, 노랑무늬붓꽃, 금강제비꽃, 등칡, 병풍쌈, 태백제비꽃, 주목 등 희귀수종 및 초본을 대상으로 선정 계획했다.

 

마지막으로 후계림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때문에 분비나무, 잣나무 등의 엄마나무인 모수 보전사업을 실행하고 기존 주목에 대한 덩굴제거 작업 등을 계획했다.

 

게다가 가리왕산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켜줄 전반적인 숲 관리계획 등도 추가 제안했으며, 슬로프 개설 이후 지형의 복원 방안과 산지 훼손에 따른 2차 피해예방을 위한 사방시설의 설치, 경관 및 동식물의 보존을 위한 토목·건축·조경사업의 유의 사항도 명시했고 가리왕산에 자생하는 비탈면의 녹화 종의 번식과 적용과 목본식생의 자연천이 기술까지 다양한 방법을 계획에 담았다.

 

동계올림픽지원위원회 심의, 보호구역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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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자생 비탈면 녹화 초류(대사초)
얼마 전 가리왕산의 유전자원보호구역 보전·복원계획이 동계올림픽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호구역에서 해제됐다. 이제는 가리왕산이 산림청의 손을 떠나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와 강원도로 넘어갔다.

 

지금까지는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과 환경단체의 의견 등이 반영돼 산림청에서 기초를 놓은 상태이다. 앞으로 산재한 문제도 많다.

 

동계올림픽 이후 사후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전면 복구·복원을 할 것인가? 당초 계획대로 진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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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자생 비탈면 녹화 초류(나도그늘사초)

우리나라 대표 산지복원 사례로 남도록 계획을 실시설계에 담아 시공까지 연결할 것인가?

 

가리왕산 나무를 베기 전에 한 번 더 계획을 점검하고 전문가그룹으로 하여금 공사 마감까지 책임을 지게 해 기술 지원 등의 모니터링이 이뤄지게 하고 지속적으로 유전자원을 보전·복원하는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강원도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는 2013년 봄눈이 녹기 시작하는 무렵에 가리왕산을 다시 찾았었다. 얼러지 꽃이 피어 임도변이 절경을 이뤘고 사스레나무는 여전히 흰빛을, 주목은 더욱 붉은 수피를 자랑하고 있었다.

 

등칡도 나오고 산마늘도 보았다. 아름드리 신갈나무에서는 다람쥐와 새들도 보았다. 모든 게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들이다. 숲의 다양한 생태계가 어울려 있는 미래의 가리왕산을 기대한다.

 

<글‧사진=숲산사산림기술사사무소 정규원 대표(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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