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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재텃밭

[환경일보] 박순주 기자 = 도시농업에서 텃밭농사를 지을 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텃밭을 운영할 것인가이다. 공동체텃밭은 텃밭을 마련하는 것부터 운영하는 것까지 도시텃밭의 대안이 될 수 있다.<편집자 주>

 

너무 멀어 관리 힘든 주말농장

 

주말농장은 가장 흔한 형태의 도시텃밭이다. 도시사람들이 텃밭농사를 짓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는 방식이다. 하지만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경우 대부분의 주말농장은 서울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서울농업기술센터에서 서울시민을 위해 조성한 주말농장이 양평이나 남양주에 있을 정도다. 그래도 신청 인원이 많아 경쟁률이 높다. 그런데 텃밭이 멀다보면 아무래도 자주 가보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주말에만 갈 수 있는 밭이 되어버린다.

 

그마저도 일이 있어 못 가버리면 한 달 만에 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텃밭을 가기위해 차를 타고 먼 곳까지 가는 것이 환경에 다시 부담을 주게 된다. 관리에 신경을 못 써 농사가 잘 안되면 주말농장의 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농장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텃밭을 대신 관리해주기도 한다.

 

직접 농사를 짓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사실 관리해주는 텃밭에 가끔 들러보는 텃밭도 꾀나 많다. 그래서 주말농장의 텃밭은 농장주에 의해 관리된다.

 

공영 도시농업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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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도시텃밭

최근에는 구나 시 차원에서 직접 농장을 조성해 구민,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분양해주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공공형주말농장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말농장의 형식은 그대로 빌려 운영하지만, 공공의 재원(세금)이 들어갔으니 공공의 성격이 좀 더 강한 형태의 주말농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들마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고 이름도 저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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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예술가
00도시텃밭, 00시민농장, 00시민텃밭, 00나눔텃밭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법에서는 이런 공적인 성격의 도시텃밭을 ‘공영도시농업농장’이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영도시농업농장이란 이름을 내건 곳은 공식적으로 한군데도 없다.

 

이런 종류의 텃밭들은 일단 주말농장처럼 분양을 하는데 구나 시에서 신청을 받는다. 대부분 경쟁률이 높아 선착순으로 선발하거나 모집 이후에 추첨을 통해서 선발한다.

 

공공주말농장의 경쟁률이 높은 것은 ▷지자체에서 운영한다는 신뢰 ▷일반 주말농장보다 저렴한 이용금액 ▷시민들이 다른 텃밭의 분양정보를 잘 접하기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특히 공공주말농장은 다양한 농사교육과 모종, 퇴비 등 기본 농자재까지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관 주도의 행정이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도시텃밭은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하게 발생해서 이어져 왔다. 스티로폼을 활용해서 옥상이나 대문 옆 공터 등의 공간을 텃밭으로 만들어 훌륭하게 도시농업을 실천하고 있었던 여러 어르신들의 텃밭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공적인 공간에도 이렇게 조성된 텃밭이 많은데, 주택가 인근 야산이나 하천부지, 군부대 담벼락 등 다양한 공간이 텃밭으로 변해있고, 손길이 많이 가서 농사도 잘 짓고 있다.

 

이런 경우 개인적인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긴 했지만,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텃밭으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최근에는 공동체가 함께 텃밭을 만들고 공동체가 직접 운영하는 텃밭에 대한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공동체가 함께 일구는 텃밭

 

3-여우재2폭넓게 공동체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텃밭의 사례로 옥상텃밭을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농사짓는 문래도시텃밭, 유휴지를 발굴해 구청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운영하는 상암두레텃밭 등 여러 단체들이 회원들과 함께 텃밭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문래도시텃밭은 문래동 철공소 옥상의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이 모이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역할과 텃밭실습, 텃밭교육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고, 도심 속 텃밭공동체를 만드는 모범적인 사례로 많이 소개된다.

 

상암두레텃밭은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가 유휴지를 조사해 구청에 텃밭을 제안했다. 그리고 원래 무단으로 점유해 농사를 짓던 주민들까지 배려해 동네주민들과 함께 가꾸는 텃밭을 지역단체, 구청, 주민들의 협의를 통해 만들어냈고, 마찬가지로 텃밭교육과 지역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마을공동텃밭으로의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

 

열우물텃밭→여우재텃밭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3개의 공동체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회원들과 함께하는 ‘여우재텃밭’은 6년 된 회원부터 올해 처음 텃밭을 일구는 회원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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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재텃밭

초기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텃밭을 즐기는 공동체가 잘 형성돼 주말마다 막걸리파티가 열리는 그야말로 공동체를 위한 텃밭이 됐다.

 

여우재텃밭은 2008년 ‘열우물텃밭’을 모태로 한다. 열우물텃밭은 지금 공사가 한창인 아시안게임경기장이 들어설 자리에 있었고, 텃밭을 옮기면서 자리를 잡은 게 여우재텃밭이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체텃밭은 일단 정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단체의 활동에 동의하는 최소의 의사표시가 회원가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농부학교와 같은 기초과정 교육을 이수해야 공동체텃밭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텃밭의 규모가 작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왜 텃밭농사를 하고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할 것인지에 대한 서로의 가치관이 맞을 때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월 1회의 공동체모임을 통해 부족한 농사 공부도 하고, 텃밭에 필요한 공동작업도 하게 된다. 지금 여우재텃밭은 회원들이 쉴 수 있는 작은 평상부터 하우스, 화장실, 수도시설 등을 모두 회원들의 힘으로 만들어왔다. 가장 최근에는 텃밭에 작은 조형물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회원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와 실천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시애틀의 P-patch

 

7얼마 전 시애틀의 도시텃밭에 대한 사례 연구를 한 책이 번역돼 발간됐다.

 

시애틀의 도시농업 이야기 ‘공동체텃밭, 그리고 지속가능 도시’라는 제목의 책은 미국의 공동체텃밭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와 시애틀의 도시텃밭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들의 공동체텃밭 역사와 텃밭운동, 공동체, 거버넌스, 공동텃밭의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있다.

 

img_3377시애틀은 특이하게 공동체텃밭을 P-patch라고 부른다. 피가르도(Picardo) 농장 주인이 이웃을 위한 텃밭프로그램을 하는 단체에게 무상으로 임대하면서 P-patch라는 용어가 일반명사처럼 되어버렸다.

 

특히 시애틀은 시 차원에서 이를 지원하는 P-패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팀이 있고 텃밭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시애틀의 공동체텃밭은 그 텃밭을 사용하는 공동체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는 필요한 재원을 매칭 펀드로 지원하거나 토지사용에 따른 제약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공동체텃밭을 지원하고, 각각의 텃밭들은 다양한 요구와 상황에 맞춰 운영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텃밭들이 자원봉사프로그램을 이용한 푸드뱅크텃밭으로 운영돼 매년 많은 수량의 채소를 기부하고, 이를 채소가 필요한 곳과 연결해주는 일명 상추링크(Lettuce Link) 프로그램으로 연계하고 있다.

 

각 공동체텃밭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노력도 있지만, 공동체를 중심으로 텃밭을 운영하고 지역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역시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원 마련이 어려울 경우 다양한 매칭 펀드를 통해 조달하고 있지만, 회원 자체의 역량을 서로 재능 기부하는 방법으로 텃밭에 기여하기도 한다.

 

도시농업, 사람의 변화가 관건

 

6-옥상농부
▲옥상농부

우리의 도시농업 정책도 텃밭공간을 많이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어찌 보면 값비싼 도시의 땅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비용을 도시농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그에 상응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도시텃밭의 기능이 단순히 상추만 생산해 내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문화적인 효과, 사회적인 효과, 생태적인 효과 등 많은 가치가 함께 구현될 때 텃밭의 가치가 커진다.

 

결국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의 변화에서 나올 것이라 믿는다. 텃밭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상추만 많이 얻으려고 농사를 짓는다면 도시농업은 실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농사를 지으면서 순환하는 삶을 실천하고 이웃을 배려할 줄 알며, 그를 통해 본인도 행복한 텃밭이 필요하다.

 

텃밭을 통해 공동체를 맛보게 하는 텃밭, 그리고 공동체는 텃밭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도시농업은 성공할 수 있다.

 

도시농업은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들에 대한 고민을 가장 우선해야한다. 텃밭농사를 하는 농부들이 누구냐에 따라 농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동체 농사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개별 도시농부만 있고, 행정이 텃밭 운영과 관리를 모두 손에 쥐고 있다면 텃밭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없을 것이고, 텃밭에 대한 소중함을 서로 공유하기 보다는 행정의 텃밭정책에 대해 눈치만 보는 도시농부들이 될 것이다.

 

지금 지방자치단체들의 텃밭도 과감하게 텃밭농사를 짓는 공동체에 운영권을 넘기는 것이 어떨까? 시민들에게 텃밭 운영권을 맡기면 어떨까?

 

최근 주민참여 예산제를 시행하는 것이 시민들에게 예산편성권을 주는 것인데, 이는 좀 더 민주주의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본다. 하물며 예산권도 주민들에게 이양하는 시대에 도시텃밭의 운영을 공동체에 맡기는 것은 전혀 낯선 주장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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