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환경 변화 적응과 진화의 살아있는 유산

구들장 논‧돌담 밭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준비

 

농촌진흥청 농업환경부 이상범 부장

 

 

세계문화유산이나 세계자연유산과 같이 보전하고 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농업유산’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있다.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세계환경기금을 지원받아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제도이다.

 

다음 세대에 계승해야 할 전통적인 농법이나 생물다양성을 가진 토지이용시스템 등을 농업유산으로 지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11개국 25곳이 등재돼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은 하니 계단식논 등 8곳, 일본은 사토야마 따오기농법 등 5곳이 등재돼 있으나 국내에는 아직 지정된 곳이 없다.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국가 중앙정부의 추천을 받아 입후보지 등록 신청서를 FAO에 제출하고 현지답사 및 서류심사 등을 받아야 한다. 심사서류에는 FAO에서 지정기준으로 제시한 ①식량·생계수단의 확보, ②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의 기능, ③전통지식·농업기술의 계승, ④농업문화(문화적 가치, 사회제도), ⑤수려한 경관, 토지 및 수자원 관리 특성 등 5가지 영역이 종합적으로 담겨야 한다.

 

국내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국가 농어업유산을 발굴‧보존하고 나아가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2012년 국가농어업유산 지정제도를 도입했다. 농어업유산 지정 관리 기준(고시)에 근거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신청을 받아 농어업유산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지정하는데, 100년 이상의 전통성을 가진 농어업유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전국 시‧군에서 신청한 64건에 대해 서류 및 현장심사, 농어업유산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금년 1월에 ‘완도 청산도 구들장 논’과 ‘제주도 흑룡만리 돌담 밭’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2호로 지정했다.

 

현재 ‘구들장 논’과 ‘돌담 밭’은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심사서류를 제출하고 서류 및 현장심사에서 지적된 내용들을 보완 중에 있다.

 

세계 각국은 지역 농업환경을 유지해 나가면서도 농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세계농업유산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대한 이해가 적을 뿐 아니라 국가농업유산제도도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국가농업유산을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보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농업유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농업유산은 박물관에 진열되고 있는 화석과 같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농업유산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보고, 지역의 다양한 관계자가 협력해 전통적인 지식과 실천을 다음 세대에 계승해 나가기 위한 동적인 보전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농업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지역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일본 농업유산의 세계농업유산 등재를 지원하고 있는 유엔대학 나가타 교수도 “지역주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프로젝트를 원활히 진행하기 힘들므로 지역주민들이 세계농업유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다양한 국가 농어업유산을 발굴하고 보전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지속적인 정책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미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경험이 있는 나라들과 협력해 노하우를 배워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비록 일본, 중국 등에 비해서 출발이 다소 늦은 편이지만, 농업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 지자체, 지역주민들이 역할을 잘 나누어서 추진해 나간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