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손 위험 속의 유물, 인건비 등 비용지원 필요
한국 역사·문화 알리는 ‘한류 전도사’ 기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주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국외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 데이터화하고 이들에 대한 활용방안을 찾자는게 대강의 요지인 듯 싶다. 필자는 불과 얼마 전에 국내 언론사의 문화재 담당 기자들과 함께 우리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의 박물관들을 취재하고 돌아온 터라 이 세미나의 시의 적절성에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후속 언론보도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현황 조사와 활용방안에 관한 여러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이뤄져야 한다.

 

국외소재유물 전수조사 선행돼야


센강을 사이에 두고 에펠탑과 마주하고 있는 기메(Guimet)동양박물관은 한국 유물이 많은 박물관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곳에서 한국 유물을 담당하고 있는 피에르 깜봉 수석학예사의 말을 빌면 지금 현재 1000여 점의 한국 유물이 소장돼 있고 100점 정도가 전시관에 전시중이라고 했다.

 

기메박물관 한국전시관 모습

 

 

한편 그는 우리 정부가 기메를 방문해 마지막 현황 조사를 하고 간 것이 1990년대 후반 무렵이었다고 밝혔다. 그 후 20년이 다 돼 가도록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요청이나 방문은 없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한국 유물 수집을 해 온 결과 100점이 넘는 유물이 소장목록에 추가됐다고 하니 이 목록들은 아마도 한국 정부의 공식 집계에는 빠져 있지 않을까 싶다.

국외 소재 문화재 조사를 정부가 게을리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르긴 해도 주요 박물관, 이를테면 루브르, 오르세, 대영박물관 등과 같은 유명 박물관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해 왔으리라 짐작한다.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강변할 수도 있지만 더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했다.

국외 소재 문화재 실태조사가 시작된 이래 문화재 당국이 현지 박물관의 홍보담당자, 학예사, 장인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왔다면 아마 지금쯤이면 실태 파악에 상당한 진척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주요 박물관이 있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우리 공관이나 문화원이 진출해 있다. 이들 조직과 인력을 활용하면 굳이 한국에서 실무자가 건너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현지 조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조직에 문화재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당국은 지금부터라도 학예사 등 전문가를 현지 공관에 상주시키면 될 일이다.

해외 박물관의 우리 유물에 대한 전수 조사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환수라는 이름으로 되가져오기 아니면 돈 주고 사오기? 절대 아니다. 가능하지도 않고, 그리 해서도 안된다. 세계 어느 나라가 자국 문화재에 등재돼 있는 유물을 순순히 내놓겠는가. 무슨 자금으로 그 많은 유물들을 사들이겠는가. 직지나 외규장각 도서 반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한 학자의 평생을 바친 노력 끝에 겨우 ‘영구임대’라는 희한한 형태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답은 어디 있을까. 개인의 헌신적인 노력만을 기대해서도 안되고 국가 수반들간의 정치적인 담판에만 의지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본디 우리 것이었으니 우리 땅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만 앞세워서도 해결은 요원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지 활용이 최상의 답이다. 지금 있는 그곳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장치로 작동돼야 한다.

 

국외 문화재로 한류 감성 전달

지금 세계 곳곳에서 한류가 인기 폭발이라고는 하나 영속성을 믿을 수는 없다. 지나치게 대중적이며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분명 한계가 있다.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재야말로 대외 만방에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알릴 수 있는 고품격의 문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신라시대 반가사유상이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전시되고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조선시대 달항아리 전시가 열리는 이유는 바로 그 속에 우리 역사의 깊이와 문화의 향기가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학술회의 발표에 따르면 국외에 소재한 문화재는 15만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중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은 3분의1도 되지 않는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15만점의 한국 유물이 지하 수장고에서 벗어나 전시관에 그 모습을 일제히 드러낸다고 상상해보자. 기메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먼지만 덮어쓰고 있는 국보급인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가 당당히 내걸리고 김홍도의 풍속화와 천수관음상이 박물관 로비에 당당히 전시가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왼쪽은 체르누치미술관의 시미주 관장과 고 이응로화백의 캘리그라피 작품

오른쪽은 고 이응로화백의 캘리그라피 작품. 체르누치미술관 소장

 

 

고 이응로 화백의 캘리그라피 작품을 100여점이나 소장하고 있는 파리 체르누치미술관의 경우를 보자. 이 미술관의 한국의 인연은 의외로 길다. 해방 직후인 1946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첫 해외전시가 바로 이 체르누치미술관에서 있었다. 반가사유상이 첫 해외 나들이를 한 전시도 바로 이 전시회였고, 이후로도 미술관은 여러차례 한국 전시회를 가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술관에는 이 화백의 작품을 비롯, 그 어떤 한국 유물도 전시된 작품이 지금 현재는 없다.

반가사유상이 해외에 첫 선을 보인 바로 이 곳에 이응로 화백이 생전에 옥중에서 완성했다는 작품을 비롯해 한국 유물이 일제히 내걸려 파리 시민들의 문화적 감성을 즐겁게 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국 하면 ‘싸이’와 ‘아이돌’만 떠올리는 외국인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고, 우리의 참모습을 알릴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이 땅에 있는 문화재를 무조건 갖고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유물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15만점의 우리 문화재가 각국의 주요 박물관에 일제히 전시될 수만 있다면 굳이 여기 있는 문화재를 갖고 나갈 이유가 없다. 해외 반출에 따른 파손이나 도난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문화재 당국의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반환’을 앞세워 현지 정부나 박물관 관계자, 언론매체들을 자극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수장고에서 우리 유물을 끄집어 올릴 수 있도록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문화재 당국 뿐만이 아니라 해외의 우리 공관과 문화원도 함께 움직여줘야 한다. 현지에 상주하는 각종 공공기관들도 뜻을 같이 하고 지원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훼손 유물 복원, 우리가 나서야

이러한 정부 당국과 공공영역에서의 노력과 더불어 한 가지가 선결돼야 하는데 바로 ‘복원’이다. 지금 당장 전시를 해도 괜찮을 만큼의 상태를 유지한 유물이 있는 반면 깨지고, 부숴지고, 벗겨지고 심지어 도저히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훼손된 상태의 유물도 의의로 많다. 굳이 전시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보존을 위해서 이런 유물들은 응당 복원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과 인력이다. 엄연히 그들 소유이긴 하나, 남의 나라 유물인지라 자국의 유물에 비해 복원작업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지기 십상이다. 어느 나라, 어느 박물관이든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문화재 복원을 하기에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마련일 터 자국의 유물을 타국의 유물보다 앞 순위에 두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왼쪽은 세브르도자박물관 일본 수장고 모습,

오른쪽은 세브르도자박물관 한국 수장고 모습

 

 

보관 상태에서도 국가별 차이는 존재한다. 위 사진은 프랑스 국립세브르도자기박물관 수장고의 모습이다. 좌측 사진은 일본 유물이, 우측 사진은 한국 유물이 보관돼 있는 광경이다. 일본의 경우 보호유리가 있는 깔끔한 진열장에 보관돼 있는 반면 우리의 유물은 보호유리도 없는 앵글선반에 보관돼 있다. 내진 설계 여부까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것만 보면 자칫 실수로 얼마든지 파손되기 쉬운 상황에 노출돼 있다. 이것이 어디 세브르 이곳만의 사정이겠는가. 사정이 이럴진대 복원까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공짜 심보로 비춰질 수도 있다.

 

복원, 장인의 역사의식 필요


복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원을 담당한 장인의 ‘역사’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자 해박한 지식이다. 사진에서 보는 도자기 유물들은 각기 그 생성 연대나 장소, 소재와 형태를 달리 한다. 유물이 생성된 국가의 시대별 공간별 맥락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해박한 지식과 인식이 갖춰진 다음에야 비로소 복원기술을 따져야 한다. 프랑스 현재 취재 시 어디를 가든 똑같이 듣는 얘기중의 하나가 '역사'였다. 그 유물이 생성된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 땅의 모든 문물과 풍습에 정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원 기술은 그다음이다.

파리에서 만난 정수희 도자기복원전문가는 “프랑스의 문화재 전문인력 양성 양대 기관인 국립문화재학교(INP)나 소르본1대학 문화재보존복원학과에서는 무엇보다도 인문학적 소양 위에 정확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이 정립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인문학 및 역사학 과목들을 커리큘럼에 포함시켜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를 강조하는 이들 기관 출신의 학예사나 장인이 프랑스 전체 복원전문가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역사에 충실한 복원전문가들 손에 우리의 유물을 맡긴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과연 프랑스식으로 한국 역사를 배운 프랑스 장인이나 학예사들이 우리 역사와 문물에 얼마나 정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한국 역사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한국의 장인이나 학예사와 ‘역사’라는 기준에서 비교했을 때 그들이 더 정통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명제다.

나름 결론을 내어 본다면 우리장인이 거기서 우리 유물을 직접 복원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식의 깊이에서 우리를 따라갈 수 없는 그쪽 장인보다 우리 장인의 손으로 직접 복원을 하는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 발표 자료를 보면 우리 유물이 어디에 얼마나 소장돼 있는지 대강 파악된 듯 하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각 소장 기관에 우리 장인을 파견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우리 정부가 그들의 인건비나 복원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프랑스나 영국,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문화재 복원학을 전공하거나 이미 활동중인 전문가나 장인이 있을 수 있다. 그들로 하여금 정부를 대신해 각 박물관에서 우리 유물 복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지 국가나 박물관 입장에서는 예산과 인력에 대한 부담 없이 소장 유물에 대한 관리와 복원이 해결되니 좋고, 해당 전문가나 장인은 직업의 기회가 주어지는데다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좋다. 우리 정부는 국외 소재 문화재의 현황에 대한 수시 파악이 용이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게 되며,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반환 협상에 대비한 명분을 쌓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무엇보다 우리 장인의 손으로 복원이 끝난 우리의 유물이 박물관에 보란 듯이 내걸리게 되는 것이 으뜸으로 좋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